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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둥소리 |  | |
| 김주영 : <천둥소리>
출판사 : 문이당 / 출판일 : 2000년 12월 20일 / 페이지수 : 366
민족 염원의 천둥소리
˝에이고, 저 놈의 천둥소리, 한 줄기 소낙비가 쏟아지려나 부다.˝
누런 삼베 저고리를 질끈 동여 맨 거친 어머니의 한 마디는, 언제나 무서움증에 꽁꽁 숨고 싶던 어린 적 천둥소리에 대한 나의 한가닥 위안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한여름 천둥소리는 왠지 모를 불안과 또한 어머니의 땀내나는 젖무덤을 생각게 하는데, 김주영씨의 ´천둥소리´는 얼마만큼 큰 소리로 나를 흔들어 놓을까 무척 두근거리는 설레임으로 책장을 펼쳤다.
이곳에서 세 번의 놀라운 천둥소리를 듣고 내 온 몸이 사그라지는 듯, 쪼그라지는 듯 엄청난 전율에 떨었다.
함양 땅 무남 독녀 신길녀가 진안의 월전리 최씨댁으로 시집와 반년을 못 채우고 청상에 과부가 된다. 시조모님의 열녀문을 칠순의 시어머님과 지키는 인고의 삶을 지낸 지 아홉 해가 지나, 행랑채 머슴인 차병조에게 정조를 유린당한 후, 그는 출세의 야망을 품고 떠나나, 신길녀는 증오의 씨앗을 복대로 조여 가며 키운다.
첫 번째 천둥소리는 어둠의 세계 속에 불가항력적인 생명의 탄생소리였다. 이 소리에 나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의 예언을 듣는 듯 했으며, 또한 그 시대의 어둠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기주의자이고 출세형인 차병조가 해방을 맞아 월전리에 다시 나타나 신길녀를 유린하고, 집을 팔아먹고, 그녀까지 주막에 팔아먹는다. 후에 군수가 되어 길녀에게는 6·25가 터져 북괴군이 날뛸 때 그녀와 친정 부모를 공산군에 학대받게 한다.
이와는 대칭되는 황점개. 백정 출신으로 최씨 집에 봉사하였고 신길녀를 아씨라 부르며 손에 닿지 않는 높은 신성한 여인으로 받들며, 그녀의 아들인 춘복을 맡아 키우고 그로 인해 천민 신분을 벗어 날 수 있다 믿으며 무비판적인 좌익 사상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빨치산 두목까지 된다.
신길녀가 강구출신의 트럭 운전사로 기회주의자인 지상모에게 유린당하여 그의 씨앗을 품고 주모 노릇으로 연명해 갈 때 황점개는 그녀 앞에 뒷산이 무너져 내리는 엄청난 천둥소리로 빨치산 두목이 되어 나타난다. 별빛 아래 들리는 이 두 번째 천둥소리는 우리 역사의 한의 소리이다. 신길녀뿐만이 아닌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가슴에 지금까지도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은 통한의 소리인 것이다. 내 어머니도 이 천둥소리에 언제나 몸서리를 쳤으며 그에 대한 긴 한숨이 있었나 보다.
이 소설에서 신길녀를 중심으로 차병조와 황점개는 팽팽한 맞수를 이루었고, 그 사이에 지상모는 또 왜 그리 길녀에게 아픔을 더해 주는지 그녀의 인생은 너무도 짓밟히는 처절한 것이었다. 해방과 6·25를 통해 온갖 고초를 겪은 신길녀는 이제 멀리 백리 밖에서 뒤채이는 천둥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빨치산들이 마을 이장인 마학기를 느티나무에 매달았을 때 그곳에는 장총과 죽창을 든 이리떼들뿐이었다. 그때 멀리 지리산 저편에서 마지막 천둥소리는 분노하여 대지를 뒤흔든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바로 우리 부모, 형제들의 이야기였다. 우리 역사의 질곡과 환난이 어찌 신길녀와 그의 아버지 신현직, 어머니 서산댁 그리고 황점개와 지상모, 창래 어멈 이들에게만 그쳤을까? 역사 속에 묻혀 말이 없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겸양의 꽃을 작가는 세 번의 천둥소리를 울리면서 꽃피웠다.
전후 세대인 나는 너무도 엄청난 천둥소리에 놀라면서 이 책을 읽어내려 갔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인생유전에 무한한 동정과 인내와 희생 그리고 겸허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녀가 바로 우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양지로 굴리는 힘이리라.
뜸마을, 놉살이 찌러기 등 많은 토속어와 태가, 비색, 하정배 등 문어체가 이루는 문장에서 방금 뚝배기에 풋고추, 호박잎 넣고 한 소름 끓여낸 토장국의 맛을 만끽했다. 풍만한 소설 천둥소리는 처음 기대에 찬 나의 마음을 지리산 저 편에서 울려오는 천둥소리만큼 가득 채워 주었다.
버튼만 누르면 따뜻해지고, 수화기만 들면 웬만한 주문은 해결되어진다고 아는 내 어린 딸애는 한여름 먹구름을 몰고 오는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을는지, 할머니의 땀에 절은 삼베 적삼에서 우리 역사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는지, 고요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편안히 잠들어 있는 우리 딸애의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으로 뒤덮인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진다.
내 가슴 가득 용틀고 앉은 천둥소리가 혹시나 사그라질까 봐 텔레비전에서 각색하여 드라마화한 것을 보지 않는다. 소설은 소설로서 우리 독자들에게 읽혀져야 그 진정한 몸짓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요즘 텔레비전에 많은 문학 작품들이 영상화되어 변질되는 것이 무척 서운하며 안타깝다. 그것은 우리 독자들을 나태하게 만들며 진정한 저자와의 만남을 왜곡시키는 것 같다.
삼팔선을 무너뜨릴 우리 민족의 염원의 천둥소리는 언제 용트림을 할는지 먼 북쪽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장차 딸애가 우리 역사의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마주 앉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리라 마음먹으며 이 한 권의 책을 가슴 깊이 새겨 본다.
(독후감 공모 일반부문 장원작)
by http://www.edu.co.kr/kwank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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