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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날과 사랑 |  | |
| 김인숙 : <칼날과 사랑>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 출판일 : 1993년 8월 1일 / 페이지수 : 336
지난 여름 엠티 때 김인숙님의 글을 토론했었다.
난 그때 되지 않은 말들을 열심히 늘어놓으면서, 아마 다시는 그녀의 글을 읽을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녀의 글을 읽더라도 독후감을 쓰는 일따윈 없을 거라고, 그녀의 글은 내겐 아무 것도 줄 수 없다고... 혼자 한 약속을 아주 잘 지키는 아이라고 자부(?)했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애시당초에 하지 않는다고...어쩌면 그것들은 약속의 형태를 다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난 그래왔다. 헌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들에 자신이 없어진다. 지난날의 약속이나 다짐을 조심스럽게 무너뜨리고 싶기도 하고... 가끔 원치 않았어도 읽어야만 하는 글들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읽고 싶은 글의 제목을 적어 동생편에 심부름을 시켰더니 그 하나의 글이 아닌 여러 편이 실린 책을 들고 나타났다. 내가 적어줬던 작가와 더불어 편집된 작가가 다름 아닌 김인숙님이었던 것이다.
김인숙님의 글을 읽고 독후감 몇 줄 쓰면서 변명이 너무 길어졌다. 이 글이 내게 확 와 닿았던 건 일단은 제목 때문이었다.
´칼날과 사랑´.
한동안 칼의 이미지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던 내게 칼날이 들어간 제목은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서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그 글이 내가 뜨악한 눈길로 바라보던 작가가 쓴 것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그랬다. 내용이 참신하거나 감탄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한 글이라 별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한 여인이 있었다. 일찍 부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시집살이하는 큰언니집에서 사돈어른에게 눈치밥 먹으며 자라야 했던...고왔던 얼굴 덕에 제법 부유한 집에 시집을 갔으나 남편의 학대와 바람기로 심한 고통으로 젊은 날을 보내야 했던 그 여인은 그러나 모든 이들의 눈에 천사로 보일 만큼 철저히 인내로써 그 삶을 지탱해나갔다. 중년에 이르러서야 철이 든(?) 남편에게 이제사 그 젊은 날을 보상받는다는 평을 들을 만큼.. 그랬던 그녀가 이젠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은 그녀가 고향에 다녀온 뒤 남편을 참을 수 없어 했다. 이유는? 놀랍게도 그녀만이 간직하고 있던 칼날이 사라져버린 상실감 때문이었다. 그 참기 힘든 젊은 시절 한때, 그녀는 고향에서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하룻밤을 보냈던가? 암튼 그 녀석의 남편에 대한 복수였는지 모르겠다. 나도 너처럼 그럴 수 있노라, 아니면 천사표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노라, 하는.. 그런 그녀가 우연히 찾은 고향에서 그 하룻밤 남자의 묘비를 읽게 됐다. 과거, 자신의 그 시간을 증명해줄 사람이 사라져버림은 안도가 아니라 자신이 여태 품고 있던 칼날의 무뎌짐, 혹은 사라짐.. 그리고 그 단 한번 휘두른 칼날에 자신이 상처받고 말았음은 그녀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들임으로써 명백해졌다.
결혼이라는 게, 흠...부부라는 게 어떤 걸까? 자신만이 알고 있는 모습으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일까? 필요에 의해 함께 살기로 해놓고서도 전장의 적군과 아군처럼 하나마나다. 싸워가는 것? 아니면 그저 어느 일방에게 끝없는 인내심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그저 어느 순간 나이가 혼자임을 어색하게 만들 즈음, 더 이상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하나의 일상처럼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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