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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 브라운 |  | |
| 에릭버거스트 - <폰 브라운>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싱글벙글 친근한 웃음을 띠며 크나큰 우주 여행의 꿈을 얘기하곤 했던 폰 브라운.
그는 1912년 3월 23일, 도이칠란트에서 태어났다. 1924년 12살 때, 상자로 만든 수레에 불을 붙여 달리게 하여, 경찰관에게 야단을 맞을 만큼 과학과 실험을 좋아했는데도 물리학과 수학은 낙제 점수였다. 그러나 학과 성적과는 다르게 그는 끈기 있게 만들기와 실험을 좋아했으며 14살 생일날에 어머니에게서 천체 망원경을 선사 받은 뒤부터 본격적인 과학도가 되기로 결심, 1929년 샬리텐부르크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이듬해인 1930년, 우주여행협회의 로켓 연구에 참가했다. 1931년 여름, 쮜리히 공과대학으로 옮겨 쥐를 이용하여 우주 여행의 영향을 조사한 뒤, 1932년 봄, 다시 샬리텐부르크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해 10월, 육군병기국 기사가 되었다. 1934년 베를린 공과대학을 졸업, 공학박사가 되었고, 1935년 1얼에는 도이칠란트 공군 폰 리히트호헨 소령에게서 로켓 비행기 개발 의뢰를 받았다.
1938년 A2형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무렵, 그의 조국인 도이칠란트는 미국, 영국 등 연합군을 상대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었고., 조국 도이칠란트가 패전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1945년 5월 2일, 미국에 항복, 포로가 되었다.
오직 달나라로 향하는 로켓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미국에 건너가기는 했지만, 도이칠란트 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많은 어려움이 그의 앞에 가로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실과 인내로 그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냈으며, 마침내 1946년 4월 26일, 뉴멕시코 주 화이트샌드에서 미국에서 조립한 첫 브이 투(V2)를 발사했다.
1954년 6월 25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한 오비터 계획을 세워 인정을 받았고, 다음 해인 1955년에 아폴로11호가 새턴 5호 로켓으로 발사되어 달로 날아갔다. 그리고 두 우주비행사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달을 밟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품었던 꿈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고 연구하여 마침내 꿈을 이룬 폰 브라운.
그는 비록 1977년에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그의 일생이 주는 교훈은 언제까지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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