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의심할 바 없이 근대 사회과학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쟁적인 저작 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이 책은 베버가 자신의 지적 경력의 핵심적인 시기에 쓴 것이며 내용이 포괄적이다. 그래서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베버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근대적 경제 생활의 정신(자본주의)과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합리적 윤리간의 연관성이니 것 같다. 베버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란 내세를 목표로 하면서 현세의 내부에서 행해지는 생활의 합리화를 의미하는 것 같다. 베버는 부의 축적을 정당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어떤 이들은 부를 쌓는 것이 안일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베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노동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규정하고 태만은 노동의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생활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세속적인 이윤은 필요악이 아니고 오히려 도덕적인 의무라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본주의 정신은 탐욕적인 욕구 충족과는 오히려 대립된다. 지금까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자본주의 정신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자본주의 원리는 사치와 방탕보다는 장인정신과 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원리와 장인정신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는 점에서는 같지만 장인정신은 세속적 의미에는 초연한 채 장인 혼을 불사르는 것이지만 자본주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의 질서에 도움이 되도록 분업체제의 일원으로서 이웃을 돕고 그 대가인 이윤을 정당하게 얻는 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를 보면 자본주의의 근본 정신이 퇴색한 것 같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적 의미를 점차 잃어가고 오로지 영리만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베버가 말하는 청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청부란 금욕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 청부 정신이 부족하다.
선진국들을 보면 실업률이 10%가 넘어도 사회가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돈버는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적 의미를 알고 이에 따라 이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버의 말대로 자본주의는 활짝 피어났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꽃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적 의미와 결합 할 때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유의하여 우리는 자본주의 정신을 실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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