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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외 : < 그리움을 위하여>

출판사 : 중앙일보 / 출판일 : 2001년 9월 25일 / 페이지수 : 370

미학의 정점에 도달한 문학의 정수는 단편 소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편이라는 작지만 형식적인 틀 속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의 절제와 생략으로 많은 상징을 만들어 내고 우리는 그 상징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나간다. 그래서 소위´명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편들을 볼 때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훌륭한 단편 소설을 보았을 때 생기는 내 몸의 변화는 그 느낌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을 만끽하게 한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우선 책장의 마지막을 덮는 내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맥박이 빨라지며 가슴도 덩달아 울렁거리고 머리 속은 무엇에 맞은 것처럼 하얗다. 쉽게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니기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소중하고 오랫동안 남게 된다.
그렇다면 제 1회 황순원 문학상의 후보작은 어떠한가. 후보작 중엔 다양한 주제와 세계관을 가진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수상작인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를 읽은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읽었던 박완서의 소설은 엄마의 말뚝과 아주 오래된 농담 두 편 뿐이지만,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난 여지없이 감탄하곤 했다.
고희를 넘은 나이에 뿜어져 나오는 그녀만의 필력은 힘이 넘치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자칫하면 지루할지도 모르는 내용을 치밀한 구성과 섬세하고도 탁월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걸작을 만들어 내곤 한다. 이 같은 박완서의 힘은 ´그리움을 위하여´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글을 끌어가는 인물은 두 명의 노인이다. 둘 모두 환갑, 진갑을 넘어 이제 산다는 것보다 죽음이란 말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나이이다. 소설은 이들 간의 수다스런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에 담겨있는 이기적인 심성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메마른 정서를 보여준다.
사람들에게는 이타적인 마음과 함께 마음 구석진 곳에 이기적인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 부유한 살림의 ´나´는 어려운 살림의 사촌동생에게 시혜자의 입장에서 온정을 베풀지만 그것은 순수한 것이 아닌 상전의식이 전제가 된 온정이다. 이런 ´나´의 심리를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듯한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로 그려내는 수사가 단연 돋보인다.
여름내 젖은 옷을 입고 잔다는 사촌동생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나는, 바캉스를 간다며 섬으로 떠나 시집을 간 사촌동생을 더 이상 부릴 수 없다는 사실만 생각한다. 그러나 섬에서 결혼을 해버린 동생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상전의식을 포기하고, 그 동안 잃어버렸던 자매애를 되찾는다.
그리고,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 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이 축복´이라는 말이 글을 읽은 내 가슴 속에 왜 이렇게 깊이 남는지... 나 역시 ´그리움´이란 단어를 그저 머리로만 알고 가슴으로는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는 메마른 마음을 가진 건 소설의 노인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은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노인의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를 보며 가슴 속에서부터 따뜻해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소설이다.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일상 속에 침전된 우리가 그 동안 찾지 못했던 숨은 그림을 간직하고 있는 소설이다. (교보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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