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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박태원 : <천변 풍경>

출판사 : 깊은샘 / 출판일 : 1989년 2월 1일 / 페이지수 : 366

<사라져 가는 삶의 요체 ´천변 풍경´>
나는 아직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한없이 무거운 물음에 <천변 풍경>만큼 명쾌하고도 가슴 뭉클한 해답을 내어놓는 소설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의 길고도 다채로운 궤적을 통해, ´삶이란 그 무엇도 아닌 다만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나가는 것´이라 전언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추레한 일상과 다양한 그네들의 면면이 우리네 삶의 풍경에 다름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 가슴 언저리가 뭉근하게 아파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박태원이 포진시킨 몇몇 인물들의 촌철 살인의 대사와 약자끼리의 모종의 연대의식으로 무장한 얄미운 패악(悖惡)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귀기(鬼氣)가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소설의 진면목은 그러한 기교 외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먼저 현실 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만 그 시대의 풍속, 유행을 묘사할 뿐인 세태소설로 <천변풍경>을 분류한 임화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소설이 단순한 세태 소설이 아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나는 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시종일관 어떤 기대감 속에서 헤매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막 약관을 넘어선 내가 그 시대 서민들의 일상을 체험해 봤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국 흐르는 일상에서 맴돌고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은, 질척거리는 우리네 생활의 동선과 철저하게 조응한다.
또한 박태원은 얼핏 하나의 이야기 속에 묶일 수 없어 보이는 인물들을 천변이라는 공간에 모아놓는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을 <천변풍경>이란 하나로 봉합했음에도 그 이음매를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박태원이 소설 속 인물들의 공간(청계천)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소설 속에서는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통해 증명된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한 사람이 잃은 시간을 다른 사람이 움켜쥐고 있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같은 이유로, 현실 반영적 측면에서도 복잡한 역사적 컨텍스트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천변풍경>을 세태소설이라 분류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앞서 말한바 있는 그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은 청계천 빨래터에서 돌연 시작되었다가 각각의 인물들의 애환을 돌보지 않은 채, 발작적으로 끝난다. 이는 그네들의 삶이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도 엄연히 존재했고, 소설이 끝난 후에도 분명히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기한다.
어쩌면 박태원은 다만 천변가 사람들의 지엽적 생활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시작이 그러하듯 종언도 예측 할수 없는, 삶의 지속성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지금의 청계천은 소설 속 인물의 호언장담이 무색하도록 일찍이 복개되어 검은 아스팔트가 깔려있다. 그 부근에 늘어선 대형 상가 건물과 복개된 도로를 질주할 자동차들을 생각하면, 나는 어쩐지 가슴에 묘한 씁쓸함이 가득 찬다. 내 가슴 속에 구질구질하다 못해 더러 구차하기까지 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뿌리깊게 박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어디 이 그리움의 정체에 구차함만 있겠는가. 박태원이 그 장식 없는 눈길과 투박한 진심의 힘으로 그려냈던 진솔한 인생이 그리운 것일 테지. 자본주의와 과학의 득세로 바라봐야 하는 삶은 곤고(困苦)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 질척한 삶의 한 가운데서, 지금도 <천변 풍경>과 같은 진품이 주는 유쾌함을 기다린다. 어드메선가 누구 하나쯤은 적막의 내공으로 이 고단한 현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그 침묵이 걷히면 낮은 곳에서 삶의 진실을 이야기 할 현대판 <천변풍경>을 볼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 생생한 진심의 날에 다시 한번 마음이 베일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 이 마음의 결락(缺落)을 견뎌본다. (영풍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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