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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럭
요시모토 바나나 : <하드보일드 하드럭>

역자 : 김난주 / 출판사 : 민음사 / 출판일 : 2002/3/10 / 페이지수 : 140

<그를 보내며>
어느 순간부턴가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그 말… 너무도 비관적으로 느껴진다 말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아서 슬픈 오늘이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다가가 내 모든 것을 주었다 믿을지라도, 헤어짐의 운명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사람의 무능력이요, 무기력임을 나는 너무도 잘 알아 버렸다. 굳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지난 21년간의 짧다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그 시절, 만나고 헤어짐의 무수한 반복이 내게 남긴 것은 이제는 겹겹이 쌓여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쌓여버린 상처와, 더 이상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벅차게 날 짓누르는 그리움뿐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건 좀 나은 걸지도 모른다. 원치 않는 이별,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멀리 떠나간 사람일지라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한 번 정도는 스쳐지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열려있으니 말이다. 죽는다는 건, 하나의 존재가 소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내 곁에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그것만큼 슬픈 게 있을까?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 한없이 마음 속에서 웅얼거리고, 나의 목소리로 거칠게 불러 보아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치는 내 목소리뿐이라면,… 난 아직 그런 슬픔까지 알진 못한다.
이 책에 실려있는 글들에는 그러한 종류의 슬픔들이 짓이겨 있다. 억지로 잊으려 들지 않고, 억지로 지우려 들지 않는, 너무도 담담하고 차분해, 그래서 오히려 더 슬퍼할 수밖에 없는 그런 슬픔. 예상치 않은 상실의 상처가 주인공을 짓누른다.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결국 그 늪의 노예가 되는 것과는 다른, 슬픔을 그 슬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작가는 채택한 듯 하다.
굳이 슬프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은 그것이 슬픔임을 알고, 굳이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아도, 눈물이 없을지라도 그것은 분명 슬픔이라는 그 사실을 작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게 아닐지… ´Hard Luck할지라도 Hard-boiled´하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 누군가를 잃음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또 다른 누군가로 메꾸는, 끊임없는 배신을 해야만 하는 존재, 그래야만 덜 쓸쓸하고, 덜 지치고, 덜 피곤한,… 너무도 나약한 인간이라는 존재…
오늘 난 그녀의 글을 통해 누군가와의 이별을 먼저 준비해 보게 된다. 더 이상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그 누군가가 떠나갔을 때 그의 빈자리가 내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게 해 보겠다고, 만남으로 인한 헤어짐이 없고, 사랑으로 인한 슬픔이 없이 살아 보고 싶다고…. 되뇌이다 보니 어느덧 끝장을 덮는다.
우습게도 언니가 사랑했던 이의 형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나. 지난 날을 함께 했던 이를 잃고, 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간직하고 살아야만 하는 나. 나는 과연 누구를 잃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 잃음은 얼마나 아프고, 그 아픔은 얼마나 지속될까… 묻고 또 묻는다. 그 물음들은 내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는 Hard-boiled 해야만 한다는, 내 안의 강요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고 나는 믿는다. (영풍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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