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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카와 늑대 |  | |
| 이보 안드리치 : <아스카와 늑대>
역자 : 김지향 / 출판사 : 연극과인간 / 출판일 : 2001/5/25 / 페이지수 : 180
<내게 남은 것>
독일 속담 중에 ´한번은 중요치 않다.´라는 말이 있다. 우연히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을 발견한 나는 그 동안 내가 해온 것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느라 하루 종일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 가게되었고, 그 도중에 읽은 책이 이보 안드리치의 ´아스카와 늑대´였다.
그 책에 담긴 8개의 짧은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것은 ´파노라마´였다. 너무도 공감한 나머지 난 한동안 그 책의 제목이 ´파노라마´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마을에 들어선 파노라마 극장에 대한 그의 추억을 옮겨 놓은 글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가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했는지 신기하다. 아마도 그 책을 읽은 같은 날에 내가 안드리치의 ´파노라마 극장´같은 특별한 극장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파노라마를 볼 때 우연히 함께 사진에 얼굴을 내민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사진 속 꽃 파는 아가씨에게서 꽃을 산 뒤, 돈이 없어져 낑낑대기도 하고 굴렁쇠를 굴리는 어떤 소녀의 일기까지 써 내려간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대 속 사람들 사이에 좀 더 복잡한 과거사를 집어넣고(그 안엔 꼭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 사연을 부여했다. 그 물건들 중에는 내가 선물한 것들도 끼어있었다. 안드리치의 다소 과장되고 복잡한 문장들을 손끝으로 훑으며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내가 극장에 앉아있던 때를 다시 기억해내었다. 그는 마치 마술사 같았다! 시간의 마술사. 책을 통해 자신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나까지 흘러간 시간으로 데려가곤 했다.
결국, 그의 이야기 속에서 파노라마 극장은 간판을 내린다. 그 장면은 정말이지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슬픈 단어들도 없었고, 슬픈 표현들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조그마한 일에도 자신의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들을 다소 고리타분하고 확대해서 적어 놓았던 그의 습관에 익숙해진 나는 그 평범한 문장들에 충격을 받아 펑펑 울어버렸다. 다음 달 7일 이면 막을 내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어떤 공연 때문이기도 했다. 파노라마가 계속 되었을 때의 그의 느낌과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의 내 느낌이 너무도 같기 때문에 그것들이 사라져 버린 순간에 다가올 고통도 같을 것이란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그는 파노라마가 사라져 버린 후의 많은 세월을 ´시간은 지났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해 버렸다. 그가 지나갔던 파노라마 앞의 거리는 그 흘러버린 시간동안 고통이 지나갔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까? 하지만 지금, 그는 계속해서 상상하고 있다. 굴렁쇠 소녀가 썼던 일기는 그녀의 아이가 이어서 쓸 것이고 이미 멈춰져 버린 파노라마는 계속해서 돌아갈 것이다. 또한 파노라마는 그가 그 당시 힘들게 마련했던 니켈로 된 몇 개의 동전보다 훨씬 값진 것으로 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난 엄청난 행운아가 아닌가. 우연히 같은 날 보게된 짧은 이야기 덕분에 끝나버릴 공연을 영원히 계속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깟 시간과 함께 흘러버린 고통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나는 이제 ´한번은 중요치 않다´라는 속담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난 책 한 권과 공연 하나를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으니까. (교보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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