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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름은 개 |  | |
| 유타 리히터 : <내 이름은 개>
역자: 박의춘 / 출판사: 이룸(김현주) / 출판일: 2000/10/12 / 페이지수: 168
<이름, 서로 부르는 것>
난 내 이름이 싫다. 뜻이나 이름 자체나 흔한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이 이름은 애초부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이름을 알려 주면 꼭 되묻는다. ˝정말?˝ 그래서 난 자신과 이름이 딱 들어맞는 이들을 보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개´도 그런 점에서 나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아주 작고 검고 마르고 더러운 개다. 그는 닭 껍질을 좋아하며 들쥐와의 대결에서 4전 1승(고양이가 도왔다) 2무(닭 껍질을 뺏겼으니 진 것이나 다름없다) 1패의 전적을 기록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나서 들킬까봐 두려워하고 사람 말, 고양이 말, 비둘기 말을 조금씩 할 줄 안다. 그리고 그는 ´개´라고 불린다.
만약 ´개´라는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면, 로타와 노이만에게 ´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방금처럼 ´그´라는 단어만 주르륵 늘어놓게 될 것이다.
´개´라는 그의 이름은 창조주인 G. 오트에 의해 지어졌다. G. 오트는 ´나의 세계´라는 책에 그가 창조하고픈 것을 스케치하는 일을 한다. 그의 모든 그림에는 이름이 붙여져 있고, ´개´ 역시 책 속에 자신과 쏙 닮은 그림과 함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째서 오트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에 이름이란 것을 부여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개´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이름을 생각해 보려고 한 것은 상당히 쓸데없는 짓이었어. 왜냐하면 그때까지 아무도 나를 불러 주지 않았거든. 나를 불러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름이 필요하냔 말야.´
창조주인 G. 오트는 자신이 만든 모든 것들이 함께 살아가길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지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다시 이름이 필요 없도록 변하고 있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자신의 배를 두드리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노이만이 ´개´에게 걸어준 노란 하트 목걸이처럼 우리들의 마음 속엔 아직 창조주의 따뜻한 시선이 담아져있다.
우리들은 ´개´가 전해주는 G. 오트와 롭코비츠가 헤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유타 리히터가 그리는 창조주와 피조물들의 단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사이는 그다지 멀지 않다. 오로지 롭코비츠만이 오트를 ´외테´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오트 역시 그만이 롭코비츠에게 ´외테´라고 불리었다. 이름을 부르고 불리운 일종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짧게나마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트는 롭코비츠를 만들어 내고 롭코비츠는 오트를 바꾸어 간다.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특히나 그들 사이에 늘 흐르고 있던 붉은 포도주는 감정의 폭을 크게 만들고 오트와 롭코비츠의 이성을 깨트려 놓아 결국은 파경을 불러온다.
자신이 창조한 것들을 믿고 그것들에게 자신의 마음까지 차지하도록 허락하였으나, 오히려 피조물들의 옳지 못한 뜻대로 조정 당할 뻔한 오트의 모습, 자신이 지켜야할 선을 넘어와 아버지와도 같은 오트에게 내침을 당한 롭코비츠. 이 둘의 모습은 현대사회의 어리석은 인간과 그 들을 외면하려는(혹은 벌하려는) 신, 자연을 보여준다.
동화와도 같은 아기자기한 이야기에서 내게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 일련의 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만 보고 들었던 ´개´나 로타, 노이만, 그리고 슐테 할아버지는 깨져버린 오트와 롭코비츠의 우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것은 이 세상 깊숙이 자리잡은(불가항력이라고 여겨지는) 문제를 그 사회의 작은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작가가 보낸 희망의 메시지리라. 그리고 난 그 희망을 손등에 묻힌 채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사들고 집에 들어왔을 때 엄마는 ´아직도 동화책을 읽니?´라고 하셨다. 겉 표지에 너무도 사랑스럽게 그려져 있는 ´개´의 그림 때문이었다. 이 그림 덕분에 난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쌍둥이 아가들에게도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내용 전개도 그림만큼이나 어릴 적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읽었던 옛날 이야기 책과 같아 무척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번역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듯 해 조금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름. 내 이름이 내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젠 내가 먼저 불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by http://www.edu.co.kr/kwank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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