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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의 아이들
전민희 : <룬의 아이들>

출판사 : 제우미디어 / 출판일 : 2001/7/27 / 쪽수 : 304

´룬의 아이들´은 다르더군요. 이런 말로 비평의 서두를 시작하게 된 것은 작가 전민희씨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찬사이기도 하고, 세 번째 작품인 ´룬의 아이들´을 읽고 느낀 기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세월의 돌에서 보여주었던 유쾌함, 태양의 탑에서 나타나는 음울하지만 강렬한 인상과는 또 다르게 룬의 아이들에서는 애절함이 느껴집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들과는 다르게, ´숙명, 또는 얽어매어진 운명´이 중심이 되어 인물들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이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룬드나얀에 얽힌 파국과 그것을 막기 위해 결국에는 정해진 대로 그 해결을 위한 길을 걷는 파비안. 이미 모든 운명이 읽혀진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를 시행하지만 아마도 그 강력한 그물에서 벗어나기 힘들 키릴. 이들은 어찌 되었든 인간의 힘이라기보다는 운명에 의해 결정 지어진 존재로 보일 수도 있고, 그런 운명에 의해, 그 존재 자체를 위협받기도 합니다.
물론 두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맥없이 운명에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인물들이 아니고, 여러 가지의 복선과 반전은 독자들조차 완성되어 가는 운명과 사건의 귀추를 기대하게 합니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룬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보리스 진네만의 이야기는 어떤 절대적이거나 거대한 힘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빠질 수 없는 상호간의 갈등에 의해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서론이 좀 길었나봅니다.
1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라면, 두 형제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주인공 형제의 모습이죠. 얽히고 설킨 애증관계에서 비롯되어 결국 형을 살해하는 동생과 험한 세파에 처음으로 나와서 결국 동생을 위해 한 목숨을 바치는 형. 대조적인 두 형제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위에서 얽혀 돌아가는 인물들을 보며,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이왕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보다 가혹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물론 전민희씨의 재능이라면, 가혹하되 너무 감정에 빠져버리지 않고, 격정적인 부분에서도 오히려 침착하게 표현하는 것에 있겠지요. 보리스의 형, 예프넨의 묘를 만드는 부분은 냉정할 정도로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이런 처연한 분위기는 오히려 흔히 보여지는, 감정의 폭발과 그에 따른 격렬한 대사 위주의 장면보다 사람의 마음 한 구석을 자극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이지만, 1, 2권에서 나타난 배경은 상당히 리얼합니다. 환타지소설이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익히 아시는 대로 그 세계 자체로서의 리얼함이 있어야만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전작 아룬드 연대기에서도 작가의 설정은 뭔가 꽉 찬 느낌을 주는 충실한 설정이었습니다만, 룬의 아이들 역시 설정면에서 그에 못지 않군요. 게다가 이 세계는 단지 환타지 세계로서의 존재만이 아니라(어떤 환타지이건 크건작건 간에 현실을 반추하는 기능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정치/사회적인 면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보여주기 기법´을 사용해서 소설 안에 설정이 잘 녹아들어 있어서, 스토리에 몰입함과 동시에 배경을 읽을 수 있더군요.
이러한 각박한 세상에 대한 투영은 2권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코 정과 사랑만으로 이끌어 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너무 나이 어린 주인공이 갖가지 시련을 겪는 것이 안타까운 만큼이나 이런 세계에 몰입하고 앞으로 작가가 보여줄 이야기에 기대를 갖게 하는 방법이라고 보여집니다.
2권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물론 계속 이름을 바꿔나가는 검술 선생과, 결국 다시 한번 세상의 각박함을 보여주는 백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역시 친구인지 앞으로의 동료
가 될 것인지조차 애매한, 란지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작은 철저한 계약 위주의 이야기를 하고, 손을 뒤집어 보이듯 보리스를 속이고 이용하는, 지금까지 주인공을 기만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전형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고, 반면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어떤 의도를 감추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애정을 갖고 보리스를 대하는 월넛 이실더, 이 두 사람은 흥미로운 인물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원작에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의 이름 몇몇이 등장하는 것도 원작을 잘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군요.
하지만, 란지에의 경우는 그와 보리스가 나누는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가지의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시사할 뿐만 아니라, 남자들간의 우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어느 정도 보여줍니다. 여성 작가의 경우 간단하게 동성적인 호감과 애정으로 이런 면을 처리하는 작품들을 많이 봐온 저로서는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가지는 것과, 이름을 아직 붙이지 않았을 뿐, 우정이라는 감정을 어색하지 않게 공유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2권까지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이것으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세월의 돌과 태양의 탑에 이어, 더 섬세하고 깊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룬의 아이들, 저도 무척 몰입하면서 읽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비평을 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완결이 되면, 더 찬찬히 읽고 난 후라면, 조금 더 상세한 비평을 쓸 수 있겠지요. (교보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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