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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장 난 라디오 |  | |
|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르고 사왔다는 라디오는
안방에 신주단지 모시듯
귀하신 몸으로 기거하던 때가 있었다.
우리 누이 교복 카라 빳빳이 풀먹여 멋부리던 여학교 시절
앉은뱅이 책상 한쪽으로 덩치 큰 밧데리 들쳐업은 라디오가
누이의 친구 되어 한참을 그곳에 있던 적도 있었다.
그 후, 내 기억 속 라디오의 모습은
3류 극장의 영화 필름 잘라먹듯
토막 토막 잘려져나 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태훈이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 터를 잡았다
그의 옆에는 올바른 소리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한 대가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소리 나지 않는 라디오를 가만 쳐다보던 태훈이
말 안 듣는 꼬봉 뒤통수 한방 먹이듯 손바닥 쫙 펴 내리쳤다.
입 삐쭉 내밀어 불만이라도 늘어 놓을 심사로
라디오가 치~직 거리자 한방 더 먹일 작정으로 손을 쳐드는
태훈이 진지하다.
심통 난 막내놈 마냥 라디오가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를 쏟아 놓는다
빙그레 웃는 태훈이 형처럼 의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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