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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행(旅行)
누군가 내몸의 문을 흔드는 소리에
불현듯 눈을 뜨고 일어나
아직도 뭇별이 반짝이는 어두운 나라
새벽의 장막 그 깊은 가슴속을
손으로 파헤치고 열어보니
이 세상의 것들 모두
어디 먼 곳으로 여행 가는 것 아닌가
아니면 어디 낯선 이방인의 땅에서
출가(出家)를 끝내고 돌아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오래도록 사막의 얼음의
고행(苦行) 길을 걸어왔던 지치고 힘든
발걸음 잠시라도 쉬어갈려고
두터운 외투 껴입은
겨울이라는 정거장에 멈춰서서
미로의 혈관처럼 머리 아프게 얽힌
숲속의 나무도
흔들리는 마음 붙잡을 수 없는
다리 아래 반역(叛逆)의 강물도
낮게 엎드려 속세의 구원을 기도하던 꽃도
참을 수 없는 욕망의 감옥을 가진 달빛도
언제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철새들도
저마다 버스에서 혹은 기차에서 내려
이제는 아무도 오고 가지 않는 버려진 길가
딱딱한 나무 의자에 무심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 아닌가
휙휙 바람결에스치고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은
멈추지 않고 걸어가야 하는 나의 삶이다
먼 여행길을 가다보면
나무와 꽃은 홀로 피었다가 지고
흘러가는 강물도 어느새 얼어붙은
추억의 표정으로 누워있고
새들은 살과 뼈와
그리고 날개까지 남김없이 버리고
오직 비행(飛行)의 의지만 남긴 채로
아아, 이 세상의 것들 먼 여행에서
이제 막 돌아와 속죄하는 눈만 가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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