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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 <당신들의 천국>

출판사 : 열림원 / 출판일 : 2000/7/28 / 페이지수 : 476(이청준문학전집4)

<진정한 ´우리들의 천국´을 꿈꾸며>
때로 우리는 일상에서 탈피해 천국으로 향하는 꿈을 꾼다. 그러나 천국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럽기만 한 것일까? 이청준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전혀 다른 천국을 그의 소설에서 제시하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 왠지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이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이라……. 과연 그 둘의 차이점은 어디에 놓여있는 것일까?
소설은 조백헌 대령이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의 병원장으로 부임해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조백헌 원장의 부임에 때맞추어 일어난 원생의 탈출사고는 원장을 난감하게 한다. 소록도에 살고 있는 환자들은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인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사람들이다. 섬에서 계속되어온 배반의 역사로 인해 소록도 원생들은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살아왔던 것이다. 오랜 세월 배반의 역사로 고통받아온 이들은 소록도를 개척하려 하는 조 원장을 불신의 눈길로 대한다. 보건과장 이상욱은 전(前) 원장들과 마찬가지로 조 원장 역시 소록도의 개발과 발전을 명분 삼아 눈부신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는 경계의 눈길로 그를 살핀다.
군부 독재 시절 쓰여진 작품이라서일까. 내가 보기엔 숭고하기 그지없는 조 원장의 행동 하나하나를 작가는 이상욱의 의구심 어린 조심스런 시선을 통해 뒤쫓는다. 작가는 조 원장에게서 자칫 잘못하면 독재자로 군림할 수도 있는 불길한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마냥 조 원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해, 그가 행하는 배반의 기척을 예민하게 감지하기 위해 줄곧 그를 숨죽여 바라보았다.
물론 조 원장은 전(前) 원장 주정수처럼 측근의 꼬임과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 자신의 동상을 만들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소록도 나환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난 조 원장의 손길이 때때로 권총으로 향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나, 위기 상황에서 약간은 과장된 말로 원생을 설득하는 데서 그 역시 소록도의 역대 원장들처럼 또 하나의 배반의 역사를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조 원장은 원생들에게 ´나도 건강한 사람들 못지 않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축구를 연습시켜 음울했던 섬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러나 축구팀의 승리로 소록도의 온 나환자들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때, 조 원장은 높다랗게 버티어 서서 그들을 희미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이상욱 못지 않게 섬뜩함을 느끼며 (소설 속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한 가지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운명을 함께 하지 않고서는 조 원장과 소록도 사람들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 원장은 언젠가는 이 섬을 떠날 건강인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섬에 뼈를 묻을 존재들이었기에 그들이 느꼈던 감정의 폭도 그만큼 달랐을 것이리라. 어디 소설 속에서뿐이랴. 우리의 삶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 때 그 대상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갖지 않고서는 나와 그가 시혜자와 수혜자로서의 수직적 상하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미래에 나환자들이 일구어나갈 농토를 마련하기 위해 조 원장의 계획 아래 득량만 매몰공사가 시작되고 나서도, 때때로 소록도 나환자들이 조 원장에 대한 불신과 배반의 기색을 보였던 것은 ´우리는 결국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갈 존재´라는 환자들의 절망적 인식 때문이었을 게다.
조백헌은 훗날 이 점을 깨닫고, 소록도 원생들과 생을 마칠 때까지 운명을 함께 하기 위해 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다시 소록도에 돌아온다. 조 원장은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윤해원(음성 병력자)과 서미연(건강인)이 결혼 후 그들의 신접살림을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의 중간지점에 차리게 함으로써 나환자와 건강인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궁극적으로 이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천국´의 차이점-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천국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 즉 이 시대, 이 사회의 사람들이 ´천국´이라는 지배층이 내세운 허울좋은 명분에 의해 희생되기 마련이다. 주정수 시대의 소록도는 바로 ´당신들의 천국´에 불과했다. 그들은 미래의 어느 불확실한 시점에서 만날 축복을 기대하며 현재를 고통스러운 노동의 시간으로 보낸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자신이 만들어온 천국의 공간에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갖지 못하고 소외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천국´에서는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노정 자체가 천국이 된다. ´우리들의 천국´에 사는 이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매순간을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천국에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간다. 황 장로가 조백헌에게 말했듯이 여기에서 빠져선 안 되는 것은 ´자유´와 ´사랑´이다. ´자유´의 정신은 우리가 그 무엇에도 속박됨이 없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노정에서 때때로 수반되는 충돌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게 마련이다. 이 때 ´사랑´은 패자와 승자 모두를 넉넉히 끌어안아 조화를 이루게 하는 따스함과 여유가 될 터이다.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은 조창원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한다. 이 작품의 작가 이청준도 말했듯이 조창원의 삶은 어쩌면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의 앞으로의 행로를 궁금히 여기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속편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조창원의 실제 삶이 소록도 환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는 점은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을 듬직하게 바라보았던 독자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부 독재 시절 개발에 앞장섰던, 그러나 진정한 국민의 행복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도자-그는 ´나라의 발전´이라는 저항하기 힘든 명분 아래 자신만의 천국을 꾸미고 그 곳에 멋드러지게 빛나는 자신의 위압적인 동상을 세우려 했던 건 아닌지 돌이켜본다. 지금, 그 아픈 시기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던 이들이 채 아물지 못한 상처를 가진 채 이 사회 곳곳에 숨쉬고 있다. 배반의 역사를 체험한 그들의 불신으로 점철된 마음을 진정한 자유와 사랑으로 풀어내는 것-그것이 바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진정한 ´우리들의 천국´을 꿈꾸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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