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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사는 집
김하인 : <사계절이 사는 집>

출판사 : 산성미디어 / 출판일 : 2000/10/15 / 쪽수 : 334

<유년기 정신의 아름다운 충격>
여섯 살 유년기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건에 대한 서술적인 기억뿐만 아니라 생각에 대한 서정적인 기억까지 함께 말이다.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흑백필름과도 같은 낱낱의 사건들이 색채를 띠게 되고 ´의미´를 갖게 된다. 1969년 당시 여섯 살인 막둥이의 ´생각´의 바다 속에서 한바탕 지치도록 뛰놀다 나온 지금, 격렬한 파도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인공에게는 유년기의 정신적인 아름다운 충격이었을 그 파도.
주인공이자 화자가 ´나´인 1인칭 시점으로 생각들을 풀어 나간 것은, 작가 스스로 아름답다고 표현한 유년을 거르지 않은 거친 감정들을 보여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아이의 걸러지지 않은 거친 감정과 생각들이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더 아름답다.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고 해서 다소 너그럽게 봐 넘겨야 할 유치함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많이 생각하게 하고,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이 책은 한 권이 기승전결의 구성을 갖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제목을 달진 않았지만, 각각의 장(chapter)은 여섯 살 아이의 정신의 흐름에 파동이 일었던 사건과 생각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 전달하기 위해 서술과 묘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그 전달방법인 묘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 표현된 여섯 살 아이의 감정과 생각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기상천외함 그 자체이다. 그러나 어른의 눈으로 본 아이의 엉뚱함과 황당한 행동들의 이면을 보면, 아이 나름대로의 논리 전개를 갖고 있다.
가령, 글 속에 아이가 아버지의 발을 땅 속에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전에 아이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덩치가 크고 우람한 그 나무는 자기의 신발은 대지이며 그 신발 속에 발인 뿌리를 담고 있다고 아이에게 말한다. 아버지와 함께 밭에 나온 아이는 문득 나무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구덩이를 판다. 아버지 종아리 반 정도 들어갈 만한 깊이다. 구덩이에 아버지를 이끌어 발을 넣게 하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물을 뿌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려는 순간 아버지의 산채 만한 손이 아이의 얼굴에 날아든다. 처음에는 아이가 어떤 재미있는 놀이를 하려니 하는 생각으로 미소짓다 나중에 얼굴이 벌개진 아버지는 생각한다. 술주정뱅이인 아버지를 매장하려는 배은망덕한 자식이라고. 그러나 아이는 생각한다. 아빠는 크고 힘이 세니까 이렇게 땅 속에 발을 묻고 있으면 아이의 친구인 그 나무처럼 우람하고 멋있는 나무가 될 것이다. 움직일 수 없으니 단골인 선술집에도 가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아이의 친구로 남을 것이다. 나름대로 아이만의 논리전개가 명확하다.
책 속에는 이렇게 아이의 생각으로만 가능한 논리가 많이 등장한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감탄을, 때로는 눈물을, 때로는 비장함까지 느끼게 한다. 그래서 중간 중간 피식 웃어보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눈시울을 촉촉이 적셔 보기도 했다. 독자에게 이런 느낌을 전달하는 주인공의 1969년 여섯 살 유년시절은 가히 ´유년기의 아름다운 충격´이라 할만하다. 격렬하지만 아름다운 유년시절이다. 이러한 유년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 살 아이가 생각할 수 있었기에 성인이 된 훗날에도 유년기의 아름다운 기억에 흐뭇해하고, 그 기억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책 속 주인공의 추억 중 하나를 옮기며,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작가 김하인의 ´사계절이 사는 집´을 추천한다.
언덕에서 아이가 자랑스러워하는 장군황소와 즐겁게 놀다가 내려오니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큰형이 집에 내려와 있다. 저녁을 먹은 후 어머니와 아버지, 큰형이 심각한 표정으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아이는 큰형의 학비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다음날, 아이가 아버지처럼 여기는 장군황소가 도살장 입구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않자 앞에서 소를 끌던 아저씨는 아이를 보며 눈짓한다. 맙소사! 끌려가는 장군황소를 어찌하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아이에게 소를 끌고 들어가란다. 황소는 순순히 아이가 이끄는 대로 들어가지만 아이와 황소의 눈이 마지막으로 마주친 순간 체념한 듯한 장군황소의 눈가에는 굵은 눈물이 떨어지고 아이의 얼굴에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다음날 아버지는 묵직한 돈다발을 큰형의 손에 건넨다. 아이는 돈뭉치를 넣을 큰형의 가방에 깨끗하고 신선한 지푸라기를 한움큼 넣어 둔다. 장군황소가 기차 안에서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도록. 며칠째 아버지의 부재 때문인지 송아지가 여물을 먹지 않는다. 아이는 울먹임을 참으며 송아지에게 말한다.
˝너네 아버지 서울 갔거든. 이 담에 말야, 돈 많이 벌어온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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