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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푸른 스물하나 |  | |
| 이명행 : <그 푸른 스물하나>
출판사 : 열림원 / 출판일 : 2001/1/1 / 쪽수 : 290
<´사랑´,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지난 여름께였을 것이다. 내 어릴 적 ´거위´에 관한 남다른 기억 때문에 제목에 이끌려 치켜들었던 ´거위가 자는 방´을 읽고, 한동안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도 섬세하게 도려내어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감탄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내게 생소했던 ´이명행´이라는 작가의 소설들을 모조리 읽어대는 열성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소설들은 대개가 가상의 정치 상황이나, 신앙, 그리고 환경을 주제로 다룬 것들이어서 결코 가볍지 않을 뿐더러 ´사랑´이라는 주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아니, 사랑에 관하여는 일찌감치 관심 밖의 소재로 취급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그러던 중 최근 그의 소설<그 푸른 스물하나>를 보고는 참으로 반갑기까지 했다. 최근 독서시장을 둘러보면, ´사랑´에 테마를 둔 소설들이 단연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읽고 난 뒤의 공허함이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 그 자체의 허무에 빠지지 않을, 인간의 좀 더 ´승화된 감정´으로서의 사랑을 그려낸 소설은 없을까...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참으로 썩 괜찮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들을 통해 속속들이 파헤쳐 보여준다. 마치 가슴 한켠을 도려내어 ´이것이 바로 사랑이지´ 하는 것처럼...
그러나 저자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표면을 흐르는 가벼운 세포들을 자극해서 주르르 쉽게 흘러내릴 만한 눈물을 쉽사리 제공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다.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면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대책 없이 헤매 다녀야 하며 뒤돌아봐야 하고, 때로는 숨가쁘게 내달려야 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멈춰서서 아픈 가슴 저편의 기억들을 낱낱이 끄집어 내어야하는 고통까지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뭔가 알 수 없는 아픔과 처절한 고통으로 절여지는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한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쓰디쓴 찌꺼기들까지도 나중엔, 가슴을 무겁게 누르고 목을 메이게 하며 드디어 ´눈물´이라는 결정체를 쏟아내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아플만하면, 그래서 결정체를 쏟아낼 만하면 어느 샌가 또 정반대 편에서 폭소를 터뜨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도무지 여유를 주지 않는 작가의 노련한 글솜씨는 독자를 숨가쁘게 몰아가서 급기야는 끝장을 보게 만들고야 만다.
더욱이 이 소설은, 어두운 시대를 어김없이 들춰내어 세상과 결코 타협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의 고뇌와 번민과 고통을 그려놓는데 유감이 없어 보인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 애절하게 피워냈던 사랑이니 참으로 가슴저릴 수밖에...... 마치 시커먼 웅덩이를 넓디넓은 이파리로 덮고 고결한 꽃을 피우는 연꽃과도 같이.
20년의 세월 속에서도 가슴 한켠에 푸른 사랑 하나 키우는 여자 수연, 그리고 마치 꼼꼼 숨겨진 보물을 찾듯, 그 먼 20년을 더듬어 오르며 옛사랑의 행복을 질근질근 되새김질하는 남자 지단... 그들의 사랑이 꽃을 피우기엔 세상은 너무 어둡고 칙칙하다.
만약 수연과 지단의 역할이 반대가 되었었다면, 그들의 사랑이 소박하게나마 꽃을 피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것 역시, 저자는 사회의 통념들을 어김없이 무너뜨려 준다. 학생운동을 하고 경찰서를 드나들고 사회의 이념에 맞서 싸우는 게 꼭 남자이어야 하나? 하는... 그래서 그런 사회적 방관자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지 못하는 자책에 빠져 현실을 도피하는 ´지단´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의 고통까지도 쓸어안아 보듬게 만들어준다.
이제 그들은, 가슴 속에 스물하나의 그 아름다웠던 사랑을 추억하는 일로서만이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도 그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그들 안에는 이미 그들의 세상보다도 훨씬 커질 ´사랑´을 키워나갈 것이므로...
´너´와 ´나´에 관해서, 그 맺어짐의 운명에 관해서,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 너무나도 쉽고 가볍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모쪼록 진정한 ´사랑 들여다보기´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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