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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꽃
양귀자 : <숨은 꽃>(1992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출판사 : 문학사상사 / 출판일 : 1992/8/1 / 쪽수 : 466

<숨어 있는 꽃들의 꽃말 찾기>
´숨은 꽃´은 마치 작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행문 같은 소설이다. 작가의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시선 속에는 한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던 소설 속의 ´나´가 귀신사에 다녀오면서 겪은 일, 그리고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기억들이 녹아들어 있다.
귀신사에서 우연히 만난 김종구는 반가워하며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한다. ´나´는 김종구의 집에서 그의 아내 황녀의 단소 소리에 푹 빠져들게 되고, 아내의 단소 가락을 음미하던 김종구가 흘리는 눈물에서 진실한 인간 내부의 단면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의 군데군데에는 주인공(일인칭 화자)이 과거에 바닷가 중학교에서 근무하며 지켜보았던 김종구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이 펼쳐진다. 염소머리를 빠개 놓고는 자신은 입에 대지도 않고, 염소골에 정신 없이 젓가락을 들이미는 사람들 사이를 말없이 빠져나가던 김종구……. 어느 안개가 자욱하던 날,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배들을 선착장으로 불러모으기 위해 맨 나중까지 남아서 누구보다 열심히 우렁찬 징소리를 울리던 김종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에도 김종구는 진정한 선(善)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종구와의 재회 후 기차 속에서 떠올리는 ´나´의 생각들로 이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아니, 결말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직도 삶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으며, 출구에 대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있으므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로에서 출구를 잃은 나, 아침저녁으로 먹히고 아침저녁으로 우는 시인의 뜸부기, 안개 속으로 사라진 김종구, 자신의 꽃말을 암호로 만든 지브란, 그리고 의사의 바느질,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으라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나는 짓밟힌 귀신사에서 본, 모래 더미에 파묻힌 이름 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어버린 꽃 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삶. 그것은 어쩌면 사각형으로 닫혀진 복잡한 미로 속을 끝없이 헤매는 과정이 아닐까. 출구는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외부의 현상에 사로잡혀 아무리 헤매다닌다 해도 닫혀진 미로 속에 출구가 있을 턱이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 게다. 세상에서, 그리고 내면에서 우리는 감추어져 있었던 숨은 꽃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위선과 거짓의 가면을 모두 벗겨낸 그 곳, 그 곳에는 원시적인 생명력을 지닌 꽃 한 송이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투명한 문이 하늘을 향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리라. 평면적인 미로에서 벗어나 우리의 눈을 드높은 창공으로 이끄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희미한 이치를 깨달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 그리고 문학이 가지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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