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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 <식물들의 사생활>

출판사 : 문학동네 / 출판일 : 2000/9/1 / 쪽수 : 294

<사랑의 원형>
근래에 들어 인터넷을 통해 새로 출간된 책을 검색하고, 주문하면서부터 서점에 직접 갈 기회가 적어졌다. 얼마간 시간과 무관하게 이 코너, 저 코너를 다니면서 신선한 때로는 쿰쿰한 책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여유로운 걸음을 잃어버린 것 같아 헛헛한 기분이 앞선다.
그래서 일까, 어느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끔 문예지나 드물게 신문지상의 그를 만날 때면 ´이제나저제나´하면서 기다리기 조차했었다. 그런데 그런 책을 그의 글들을 좋아하는 얼굴 모르는 한 친절한 메일친구로부터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하나의 소중한 문장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아찔한 현기증 같은 게 느껴졌었다. 바로 이승우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
그렇게 집어든 이승우의 근작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은 우리 마음의 저 안쪽에나 있을 법한 ´동화´같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표면상으로 여기엔 두개의 사랑이 의도적인 대칭적 구조로서 존재하고 있다. ´나-형-순미´의 사랑과 ´아버지-어머니의 첫사랑-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각각 ´순미´와 ´어머니´에 대한 위험하고 어긋난 사랑 속으로 ´형-순미´와 ´어머니의 첫사랑-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조력한다.
이 사랑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 꺼풀의 상징의 옷을 입는다. 작가는 움직임이 없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어디인지 모르는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천만 개의 욕망의 뿌리´라는 식물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동물성 인간들의 충혈된 사랑을 나무들의 딱딱한 껍질 속에 보이지 않는 부드럽고 따뜻한 생명력으로 정화하고 환원하려 하고 있었다. 마치 성서 속 ´에덴´의 그들처럼.
결국, 이 소설은 나무가 되려는 사람들의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형-순미´가 소나무와 때죽나무가 되려하고, ´어머니의 첫사랑-어머니´는 야자나무가 되려한다. 또한 ´나´와 ´아버지´는 그들 나무들과의 교감을 통해 나무가 되어 그들을 보호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그 제목이 의미하듯 오늘날 황량하고 위협적인 시선만이 오가는 동물성의 세계 속에 결핍된 깨끗함과 부드러움 따위, 그리고 그 나무들의 내밀한 욕망들이 타자를 위한 강렬한 사랑임을 확인해줌으로써 그들 식물의 삶과 사랑법을 닮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작가 이승우는 이 <식물들의 사생활>을 통해 사랑의 원형을 그려보려 한 것이다. 그런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1991년 그가 <따뜻한 비>를 펴내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무기질의 ´연애소설´을 한 편˝ 썼었고, 1996년 <사랑의 전설>에서는 ˝꽤 오래 전에 꿈꾸어왔던 한편의 연애소설˝을 써내면서 그들 소설에서 그려내지 못한 나머지 90퍼센트의 사랑을 기약했었다. 그 기약의 실현이 여기 <식물들의 사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닐 게다. 모르긴 해도 못 다한 ´90퍼센트´의 사랑을 언젠가 또 그려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들 하니까.
여하튼, 책을 덮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아쉬워하고 그의 작품집에 갈급(渴急)해 하는 지 모를 일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재미있되 결코 경박하지 않고, 의미 있되 결코 현란하지 않은 정직한 글투와 세상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사랑의 시선에 신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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