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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

역자 : 장경룡 / 출판사 : 문예출판사 / 출판일 : 1999/9/10 / 쪽수 : 238

내가 사는 진주는 눈을 보기가 굉장히 어려운 지방이다. 그래서´진주´라고 발음 할 때의 그 산뜻하고 수정같이 맑은 느낌은 겨울엔 왠지 맞지 않는 것 같다. 뭐 꼭 눈이 내려야 순수한 세상이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눈에 대한 아련하고도 신비한 추억이 모자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한번 눈이라도 맞으며 펑펑 울어라도 보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올해 12월 나는 ´설국´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중학교 때 할 일이 없어 이것저것 뒤적이다 ´일본사람이 쓴 책이다´ 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설국´을 단숨에 읽어버린 것이다. 단숨에 읽어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지만,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펼쳐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토록 묘해지는 것이다.
정말 읽기는 아주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막상 떠오르는 것은 뭐랄까, 묘한 허무인데 그것이 꼭 세상을 자포자기한 추락하는 허무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정말 내 감정을 이렇게 따지고 들기는 뭣하지만 무엇인가 허공에 붕 뜬 느낌이 자꾸 든다. 어쩌면 이번 겨울을 시마무라와 같이 무위도식하면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겨울뿐만 아니라 단풍이 지고 난 다음의 ´설국´을 보고 싶은 지도 모른다. 어떻게 겨울이 찾아드는가를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 가운데 고마코, 요코, 그리고 말없이 죽었던 유키오, 설국의 게이샤들, 꼬맹이들, 장님인 안마사, 여관 주인 등의 사람들이 죽은 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좁게 말하면 일본인들의 애틋한 감수성을 한껏 자극시켜 조국을 가슴에 품게 하지만, 설국인들의 마음엔 그저 살아가는데 이쯤 되면 이게 오고 저게 소멸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눈은 사르르 녹아 봄 기운을 북돋아주는 물줄기가 되고 또 겨울엔 눈이 내리고 어떤 게이샤는 어떤 남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자다가 일어나 보니 아침에 눈발이 그야말로 하염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모든 차들이 하얀 담요를 덮어쓰고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답던지 주무시던 부모님을 깨워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어린아이가 ´저것 보라지´하며 재롱부리듯. 그러나 나는 된통 꾸중만 듣고 말았다. 운전 못하게 됐다면서 잠까지 깨웠다나 뭐라나......
적어도 ´설국´에는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걸어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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