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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향기
서하진 : <라벤더향기>

출판사 : 문학동네 / 출판일 : 2000/8/1 / 쪽수 : 304

<아름다운 불륜 혹은 위험한 사랑>
˝그 여자를 사랑하나요? 내가 물었을 때 남편은 말했다. 너도 사랑해. 그건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생각만큼 그 말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어. 그냥 일이 그렇게 됐어. 남편의 그 말이 내게 상처를 입혔다.˝
이처럼 서하진의 글은 짧으면서도 모질다. 표제작 ´라벤더 향기´ 외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한결같은 작가의 문체는 따옴표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직설적이다. 그리고 그 어디에나 그녀의 주인공은 중병을 앓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대개는 불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리하여 불륜의 냄새가 짙은 사랑이다. 그럼에도 역겹다거나 부도덕하다거나, 그도 아니면 억지스럽다는 식의 인위적인 혐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불륜´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독자들은 화가 날지도 모른다. 이렇게 완벽한 불륜이 왜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가 싶어서.
15층짜리 아파트의 8층에 사는 여자와 7층에 사는 남자가 벌이는 위험한 사랑(´라벤더 향기´), 옛 여인의 미망에서 헤매는 남자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여자(´모델하우스´), 불행한 탄생의 굴레 속에서 사랑을 빼앗긴 여자(´기차가 지나는 마을´), 들킨 불륜 앞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여자(´불륜의 방식´), 빼앗긴 세월만큼 무너져내린 여자(´개양귀비´) ......
서하진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그러나 절대적인 사랑에 휩싸이곤 한다. 대개의 모티브는 일상의 건조함 혹은 남편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직설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매력이 또한 서하진의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는 ´향기´의 이중성이 은유의 대표적인 장치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막 피어난 꽃이 풍기는 향기의 은은함은 그러나 악취로써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서하진 소설의 특징을 평론가는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타락한 일상에 더 이상의 희망을 걸 수 없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꿈과 욕망을 꽃과 별, 향기라는 이미지들로 분출시킨다. 그것은 아주 잠시 피어났던 정염의 순수한 불길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환각들이다. 꽃과 향기의 세계는 속악한 일상으로부터 여성들을 구원해 주는 피난처와도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라벤더 향기> 속에서 나는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의 망연자실함은 곧 내 일상에 대한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옆에서 바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불안함... 그럼에도 쉽사리 내팽개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 책갈피 속에서 나는 기어이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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