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안개
우나무노 : <안개>

역자 :김현창 / 출판사 : 범우사 / 출판일 : 1997.9.10 / 쪽수 : 244

우나무노의 ´안개´는 한 남자의 사랑과 죽음이란 단순한 줄거리 속에 많은 의미들을 집어 넣은 소설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인 아우구스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무미건조하게 살던 중 한 여인, 에우헤니아를 만난다. 끈질기게 서투른 구애를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실망하고 포기할 즈음, 건달 애인에게 설득당한 에우헤니아는 아우구스또를 속이고 구애를 받아들이는 척 하다가 애인과 함께 아우구스또가 구해준 직장이 있는 곳으로 멀리 달아나 버린다. 아우구스또는 실망하여 자살을 생각하고 작가인 우나무노를 찾아가 자신의 존재에 관해 논쟁을 벌이다 그만 ´사형´을 선고받고 돌아와 결국 죽고 만다.
이런 줄거리 속에 우나무노는 많은 자신의 사상을 집어넣은 것 같다. 사실 이 소설과 같은 줄거리, 이 소설에 나오는 대화는 세상에 존재할 법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 점이 책을 읽는 나를 때때로 짜증나게 했다. ´소설´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은,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개´는 그러한 점보다 이야기 속에 작가가 사유한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에 더 치중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 중 내가 읽은 것 대부분이 그런 경향이긴 했지만.
우선, 이 소설의 주 ´이야깃거리´인 아우구스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우구스또는 불쌍하게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얽매여 살아왔다. 일찍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아들을 남편처럼 생각하고 의지하게 된다고 한다. 어머니는 매일 밤 자기 전, 아우구스또에게 ˝난 너를 위해서 살아야 해. 단지 저를 위해서, 아우구스또야.˝라고 했었다. 이렇게 완벽히 어머니에게 지배당하며 커온 아들이 의존적 성격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우구스또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자신을 어머니 대신 지배해줄 여성을 찾아 헤맨다. 그 때 에우헤니아가 나타난 것이다. 아우구스또는 구애를 함에 있어서도 서투르다. 수줍어하고 접근 방식도 간접적이다.
더구나 에우헤니아에게는 애인이 있다. 감정은 속일 수 없다. 아우구스또의 사랑은 끝까지 외사랑일 뿐이었다. 서툰 아우구스또는 여자에 대한 이론과 환상만 가졌을 뿐, 실생활에서 연애의 경험이 풍부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심리학´이니 어쩌니 하면서. 심지어 아우구스또는 하녀를 농락하면서 학자인 척하고 있다. 빠빠르리고뿔로스는 ´분석할 수 없는 것´을 분석하려 한다. 빠빠르리고뿔로스는 ´여자란 단지 하나의 동일한 집단적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우구스또가 에우헤니아를 사랑하기 시작한 후 모든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으로 말한다. (여기서 우나무노는 수많은 ´석학´들을 비판. 풍자한다.)
어머니하에서 성적으로 억압받았던 아우구스또가 에우헤니아를 본 후 그런 감정에 눈을 떠서 자연스레 모든 여자에게 그런 말초적 감정을 느낀 것일 뿐이다. 친구인 빅또르도 비슷한 이야기를 아우구스또에게 한다. 인간적 약점이 많은 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뽐내면서 감정적인 것까지도 ´차갑게´ 생각하려 한다. 마음의 상처를 머리로 치료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또는 에우헤니아를 뿌리치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서도 에우헤니아가 친 덫에 간단히 걸려들고 만다. 모든 것을 머리로만 생각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스설적 인간´ 아우구스또인 것이다.
우나무노는 보르헤스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것을 찾아보니 두세 가지 정도가 눈에 띄었다. 우선 작가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풍자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현실에 잘 맞지 않는 사실을 많이 이야기하는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식의 아이러니가 보르헤스 작품에서도 곳곳에 보인다. 자신의 사상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방식도 보르헤스가 차용한 방법인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보르헤스가 원형의 폐허에서 이야기한 ´꿈과 현실에 관한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삶이 창조주의 꿈이 아닌가하는 생각은 소설의 제목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제목인 ´안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삶에 있어서 불확실하고 불안정적인 것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인간들은 신이 꿈꾼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보자. 인간들은 신이 깨어 그가 꿈꾸던 자신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을 찬양하여 깨지 않도록 한다.
우리는 그의 꿈대로 움직이는 ´소설적 존재´인 것이다. 마치 작가와 그가 만든 인물처럼. 우리는 신의 조종을 받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으나 무엇인가 불안하고 불확실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책에서 ´안개´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우구스또의 수많은 상념마저도 작가의 조종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가장 신선한 부분인 마지막의 작가와 대면하는 부분은 마치 니체 - 그의 사상에 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 와 신의 상면을 연상케 하는 것 같다. 아우구스또는 자신이 실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형선고´까지 받자 절망하면서 우나무노에게 당신도 죽을 거다하고 말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다. 옛날 화장실의 낙서에서 ˝니체는 죽었다. -신-˝이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간에 대한 풍자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아우구스또가 기르던 개 오르훼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오르훼오는 외로운 아우구스또가 가장 가까이 하는 동물 친구이다. 에필로그에 개의 죽음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한 우나무노의 비웃음이 아닌가 한다.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