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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문의 길
조동일 : <우리 학문의 길>

출판사 : 지식산업사 / 출판일 : 1993/6/1 / 쪽수 : 338

언젠가 한 친구가 인문학도인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상하게 인문학을 하는 애들은 책을 보면 저자에 관심이 많더라. 우린 누가 썼는지는 별로 상관 안 하는데..˝ 밀란 쿤데라 역시 인문학도여서 그랬을까? <불멸>이란 소설을 통해 쿤데라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결국 남게 되는 것은 <파우스트>가 아닌 괴테, 작품이 아닌 작가라 말했었다.
각설하자. 이 책의 주장은 ´오늘날 이 땅의 학자들은 서양 것 베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듯 수입되어 온 이론들이 우리의 현실에 제대로 들어맞을 리 없고, 우리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되지 않으니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가능할 리 없다. 결국 우리 학문의 길은 우리 전통 사상의 맥을 이음으로써 찾아져야 한다. 선진국들이 우리와 같은 제3세계의 학문에 눈 돌리지 않는 데 비해 우리 같은 제3세계의 국가는 선진국의 학문을 충분히 배워 익히고 있으니 진정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 이론은 오히려 우리 나라에서 창조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동일 교수는 이러한 주장을 단지 흰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원효에서 최한기에 이르기까지의 굵직굵직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아직 우리 나라에 변변찮은 소개서 한 권 제대로 없는 그들의 철학을, 그것도 핵심되는 내용을 콕콕 꼬집어 내는 것을 보고 나면, 우리는 당연 저자의 박학함과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하물며 그가 철학과가 아닌 국문학과 교수임에야! 이 책을 통해 내 가슴에 가장 와 닿은 것은 그가 그토록 열변하는 학문론이라기보다는 한 노학자의 그칠 줄 모르는 정열에 대한 감동이었다.
그러나 학문하는 이가 뜨거운 가슴과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냉철한 이성이다. 조교수의 주장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학문이 과연 우리 나라에서 가능햐냐가 아니라 그 학문이 반드시 우리의 전통 사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독단에 있다. 물론 조동일 교수는 책을 통해 밝혔듯이 전통 사상에서 거대 이론의 가능성을 확인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이러한 학문관을 자신의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학문일반으로까지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그에게 전 인류가 인간답게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학의 부활뿐이다.
만약 이 책이 ˝우리˝ 학문의 길이 아닌 ˝내˝ 학문의 길이었다면, 이 책은 위의 비판을 전혀 용납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조동일 교수 개인이 찾은 가능성이요, 그 자신의 창조적 역량이기 때문이다. 만일 책의 제목이 <내 학문의 길>로 바뀐다면, 이 책은 한 학자의 평생을 통한 연구가 어디에 이르렀는지 또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어갈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가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이제 막 학문을 시작하려는 이에게 반드시 권해져야 할 책이 된다. 그것은 우선 조동일 교수가 제시하는 뛰어난 학문적 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그 책을 통해 평생을 오직 학문의 발전을 위해 몸바친 한 노학자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혼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에 의지의 불을 밝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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