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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랑은 왜 |  | |
| 김영하 : <아랑은 왜>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01/2/15 / 쪽수 : 286
<역사소설과 메타소설의 화려한 만남, 산문정신의 진수>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영하가 또 보여주고 말았다. 나는 그의 지독한 독자 중의 한 사람인데, 그의 <<아랑은 왜>>(문학과 지성사)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서점으로 달려갔다. 급한대로 첫장을 펼치며 그의 새로운 소설미학의 여정을 훑어나갔다.
그는 오랜만에 장편을 썼는데, 문학동네 제 1회 신인상 수상작이자 문학사의 이정표를 남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문학동네, 1996) 이후 5 년만이다. 이때껏 그가 보여준 소설의 세계는 가히 문학판을 뒤집어엎을 만한 폭발력을 내장한 것들이었다. 이는 문학사가, 비평가, 다른 소설가, 시인, 독자들이 두루 인정하는 것이라 새삼 말할 것이 못될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가 보여준 환타지성의 대중문화의 속성이 소설 고유의 미학과 접합되어 문학의 자생력을 획득케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학도 인간이 하는 일인만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일쑤다. 그런 현상을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문학이 겪었다는 것은 새로운 소재와 치밀한 작가의식이 부재했다는 말일 터인데, 이런 현상을 타개해 나간 장본인이 김영하였던 것이다. 그의 전위적인 글쓰기 이후로 무섭게 등장했던 백민석, 정영문 등은 새로운 소설쓰기의 전형을 제시했다.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간다>을 썼던 시인 유하의 후예라고 해도 무방한 이들은 소위 테크노키드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펼쳐나간 포스트모던시대의 전사들이다.
따라서 시에서는 유하, 소설에서는 김영하. 이런 점에서 김영하는 소설쓰기의 새로운 텃밭을 일군 작가라 할 수 있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장편 <아랑은 왜>는 현대와 과거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새로운 서사미학을 창출하고 있다. 흡사 영화 <은행나무침대>를 연상케도 하는 이런 기법은 그 터무니없음으로 해서 자칫 이야기의 현실적 기반을 상실할 소지가 많다. 그러나 타고난 이야기꾼 김영하는 이런 위기적 순간을 자신만의 소설쓰기의 방법론으로 극복해낸다.
이른바 메타소설(meta-fiction)! 이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가 김영하는 자신이 경남 밀양이란 곳의 전설인 아랑에 관한 이야기와 오늘날을 살아가는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병치해가며 한 편의 소설로 엮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소설을 쓴다는 작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제시하기도 하고 또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메타소설의 기법으로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이어가고 있다. 밀양 지방의 아랑 전설을 작가정신을 동원 냉정하게 바라봄으로써 오늘날의 추리소설과 같은 이야기로 변형시키고 있다. 또한 작가는 작품의 인물 설정에 고민하게 된다는 점을 이용, 아랑과 김억균 등의 인물 설정에 필요한 현실의 존재를 자신과 미용실에 일하는 젊은 여자를 등장시켜 소설쓰기의 현장성을 강화하고 있다. 가히 김영하다운 솜씨라 할 만하다.
김영하가 몇 년 전에 발표한 단편 <흡혈귀>라는 작품에도 메타소설 쓰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전형적인 메타소설일 따름이었다. 물론 뛰어난 기법과 상상력이 결합된 것임은 분명하나 기존 메타소설의 울타리를 크게 뛰어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장편 <<아랑은 왜>>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작가의 소설쓰기라는 행위의 노출과, 조선중기부터 내려오던 ´아랑전설´에 현대의 감각을 불어넣음으로써 소설의 틀을 또한번 뒤집어엎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단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역사소설이고, 또 그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작가가 처해 있는 시대의 울타리에서만 발휘된 상상물이라면, 이제 김영하의 <아랑은 왜>는 이 둘의 종합을 보여준다. 역사소설과 메타소설의 변증법적 종합인 것이다.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은 김영하가 독자들과의 수평적 관계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랑은 왜>를 읽어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억지로 이야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대화를 통한 이야기 창출을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설이나 역사를 날조, 왜곡했다는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소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독자와의 기묘한 공모 아래서 가능한 것일 터인데, 김영하는 이를 성공리에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소설이란 장르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만들어 가는 것, 곧 창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언제나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지는 것이리라. 나아가 그에게서 이 시대의 산문정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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