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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루나
이사벨 아옌데 : <에바 루나>

역자 : 황병하 / 출판사 : 한길사 / 출판일 : 1991. 6. 1 / 쪽수 : 396

<사랑의 힘으로 불의를 키우지 말라>
남미 소설의 한 특징이며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나에게 참으로 인상깊은 기법이다. 아옌데는 ´재미없는 책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작가적 신념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아무리 비참한 빈민굴의 이야기도 그녀는 유럽 왕족들의 스캔들처럼 재미있게 묘사해 낸다.
희망을 가진 여주인공 에바 루나는 하녀의 딸로 태어나 하층민들의 사회에서 이집 저집 전전하는 어린 꼬마로 가진 것이라고는 ´이야기하는 재주´뿐이다. 그녀가 성장하며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는 아니다. 이 소설은 자살과 변태조차도 웃으면서 읽을 수 있게 묘사되어 있다.
먼저 에바의 첫사랑인 우베르토 나랑호. 그는 고아이며 코흘리개 아이 때부터 뒷골목의 깡패였다. 그는 혁명을 지향하고 에바에게 순정을 바치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남자´로,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에바를 사랑하지만 혁명을 위해 아무 것도 약속하지 못한다.
에바를 한동안 데려다 키우며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가르쳐주는 다정한 터어키인 리아드 알라비. 그는 입술이 흉하게 뒤틀어진 언청이이며 남미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슬람교도이다. 그러나 그는 삶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한다. 아내인 줄레마에게도 정열적인 사랑을 바치지만, 줄레마는 그의 흉한 입술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리아드 알라비를 ´손수건으로 입술을 가린 채 여인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창안하느라 일생을 보낸 남자´라고 표현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유능한 기자인 롤프 카를레. 그는 유럽인이지만 아버지의 폭압 속에 괴로워하다가 남미로 이민을 왔다. 변태에 히틀러 같은 심성을 가진 아버지가 결국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자 그 가족들은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그는 ´자신보다 누군가가 먼저 그를 죽였다는 사실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상처받은 엘리트 청년인 롤프는 자신의 어두운 기억들을 에바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극복한다.
동성애자와 창녀, 장애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아옌데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권위와 폭력에 대한 저항과 상류층의 위선에 대한 반감도 아옌데의 소설의 기본 정서를 이루는 부분이다. 롤프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인데 제자에게 살해당한다. 배웠다는 사람이 인간답게 굴지 못하면 맞아 죽어도 하는 수 없다는 게 아옌데의 후련한 주장이다. 아옌데는 곳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림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 차라리 그를 혼내 주어요. 그러면 좀 정신을 차릴 겁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이 방향을 잃고 무기력해진다고 느낄 때 에바 루나를 생각한다. 여섯 살의 꼬마 하녀가 몰상식한 명령을 하는 여주인에게 달려들어 머리칼을 다 뽑아 놓던 장면을 생각한다. 어린 에바는 힘든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불의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삶을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당당한 에바.
나는 그녀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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