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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는 ´날아가는 새´입니다.

소설은 경험이다. 詩보다도 호흡이 있어야하고, 수필보다는 가슴에 와 닿아야 하며, 어쩜 그 어떤 전기보다도 사실성이 더 필요할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소설이 허구의 문학이라고 얘기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문학의 형식만 중요시 여기며 아무런 이유없이 문학을 대하고 아무런 사고없이 문학을 읽는 우리들의 구차한 변명에 지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호흡이 있는 소설이 있다. 가슴이 찡하도록 울려오는 소설, 너무나 많은 얘기인데도 틈틈이 새어나오는 진실의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경험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있다. ´과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바로 사는 것일까?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의 生,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이던가?´하는 극히 원초적인 자아발견으로부터 시작하여 人間본질에 대한 자각심을 일깨우고 내 삶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와 그렇게 살기 위한 강한 ´의지´를 굳건히 세워 준 책, 그 책이 바로 고미까와·쥰빼이의 ´人間의 條件´이다. 모든 작가들이 다 고난과 역경 그리고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大作을 쏟아 놓지만, 이 책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 人間의 조건은 고미까와·쥰빼이의 자서전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본질적 문제를 바탕으로 아픈 생애의 체험을 낱낱이 해부해 놓은 책이므로 지금부터 나는 작가의 생애와 이 책의 줄거리를 비교하면서 나의 감동을 글로 옮길까 한다.

1916년 日本이 아닌 滿州땅에서 태어나 시골 소학교를 거쳐 장학금으로 동경大學에 입학, 이듬해 퇴학당하여 광산으로 전전하게 되면서 이 책 1部와 2部에서 펼쳐지는 주인공 ´가지´의 광산사업, 노무자들과의 대립, 상관과의 금전관계, 그로 인한 인간성의 갈등 등이 휴머니즘으로 굳어지는 가치관으로 섬세하게 그려진다. 2部의 고문장면은, 작가가 다시 들어간 대학의 特高에서 육체적·정신적 고문을 당하는 시련을 맛보았기에 더욱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다. 졸업과 함께 日本이 경영하는 만주의 거대한 군수회사에 입사, 여기서는 전쟁 과업의 수행이란 미명아래 휴머니즘을 말살하는 기계적인 조직과 그 힘의 강압이 꿋꿋하게 대결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주인공 ´가지´의 전면을 탄생시킨 작가의 고충이 역력히 보이고 있다. 43년 군에 입대하면서 4·5·6部에 기록되어진 사실들이 참 진실로서 인간의 조건의 핵심을 가리키고 있다. 남하하는 소련군과의 전투에서 소속부대가 전멸하는 비운을 겪고는 6部에서 자기의 전 부대가 모두 쓰러지가기까지의 참담한 과정을 생동감 있게 써내려 갔으며 그렇게 하여 소화시킨 작품이 대작 ´人間의 조건´인 것이다.

이 작품이 1956년 발표되자 일본에서 공전의 인기를 얻고 방대한 독자층을 얻게 되었다고 이 책 뒷면 해설자가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인공의 꿋꿋한 정의감과 성실한 人間愛 때문이었을 것이다.

죽고 죽이는 전쟁이란 아수라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결국 소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 사랑하는 아내 미찌꼬를 향하여 눈 덮인 만주벌판을 걸아가는 가지, 그러다가 끝내 그 허허대륙에서 눈에 덮혀 목숨을 잃지만, 그것이 결코 정의감의 좌절이나 패배를 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인간상은 주인공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완성되었다 하여야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중간 정도 읽었을 때, 꽤 많이 울었다. 고문을 받을 땐 같이 아파하면서, ´그건 정말로 잘못된 人生이다!´ 외치기도 하면서 비인간의 가식된 몰골을 헤치고 결국엔 자신이 하나의 人間으로서 존속해야 한 주인공의 투철한 삶의 의지, 그리고 언제나 그에 따르는 아픈 고통들, 아마 분명 나는 또 그렇게 울부짖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일본 문학이라서 그런지 한국의 명작과는 조금 색다른 점이 있다. 예를 들면 남자의 경우, 쉽게 흥분하여 싸우고 총검의 대결로써 승부를 결정하려 하는 장면이나 여성들의 그 고분한 자태 등은 참으로 많은 경이감을 주었지만, 결국 세계적인 패전국으로서의 일본, 국가적 고난과 恨은 일찌기 우리 나라가 맛보아야 했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여 일종의 고소함도 느낄 수가 있었다. 본질적으로 인텔리는 나약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1部에서 가지를 색안경 쓰고 보긴 하였지만, 차츰 강인해져 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저건 지나치게 초인적인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도 가져 보았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가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을 주인공은 잘 소화하여 주었고 그래서 내게 더 큰 이상이 되어 가슴에 남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지는 작가의 꿈을 담은 분신임과 동시에 우리네의 정의요, 우리네의 의지인 것이다. 군대와 전쟁의 비판에 있어 작가는, 당시 일본제국의 군인이면서도 그들이 잔인하게 활용하던 특권의식을 배제하고 또 저항하였던 것이다. 어느 일본 평론가는 말한다.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가 지니고 있는 모순에 도전하는 양심, 그리고 인간과 역사를 본질적으로 파괴하는 전쟁에 대한 냉혹한 비판 등은 그를 일본의 전형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게 한다´라고.

이 책을 읽고 난 내 여린 가슴에도, 한 번 큰 호흡하여 맴도는 말이 있다. ´인간은 人間이어야 한다는 것´ 천사의 말을 한다 하여 하늘로 오를 리가 만무한 人間은 영원해야 할 인간성을 억척스럽게도 고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없는 진리이며, 그것이 또한 비인간적인 조건 下에서 퇴색되어진다 하여도 우린, 힘써 그 병든 자국을 치료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 할 일이요, 곧 이 일은 변하지 않는 본질 위에서 그 가치를 맘껏 빛 발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럼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린 어떤 치료방침을 세워야 하는 것일까? 그건 하나 뿐이다. 책 중 주인공의 그 강한 ´의지의 힘´ 그 뿐인 것이다. 그리고 가지는 되뇌었다. 넘어지고 넘어지면서도 가지는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 힘겨운 生에서 철통같은 의지의 힘이 솟아나지 않았던가.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을 찾아주려는, 퇴색하여 가는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人間의 노력은 단지 책 중 주인공에 의하여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인생이라 생각하면서, 그래도 이 길이 바른길이라고 자위도 하면서, 또 그렇게 우리는 인간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는 날 때가 가장 아름답듯이, 인간은 스스로가 본질을 지키면서 계속 ´사고´하여, 인간이 되어갈 때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人間이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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