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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  | |
| 작품명 :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작가 : 이외수
쓰여진 때 : 1980년
1. 우리는 모두 고독한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성(城)을 쌓고 살아간다. 자신이 쌓아놓은 성 안에서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을 설정하고 또 그러한 기준과 잣대로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하기에 같은 사물이나 상황을 보아도 저마다 다르게 바라보게 되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사내와 청년은 둘 다 한 여자를 사랑했다. 사내는 그 여자의 남편이었고, 청년은 그 여자가 남편과 잠시 떨어져서 바닷가로 왔을 때 두 달간 동거했던 남자였다. 그러나 사내와 청년은 다른 잣대로서 그 여자를 평가하였다.
사내가 평가하는 그 여자는 육체를 좋아하는 즉, 육체의 욕망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반면 청년이 생각하는 여자는 정신적 사랑을 더욱 숭고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사내와 청년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그 여자를 바라보기 때문에 각자 상반된 평가를 하였다고 본다. 먼저 사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몸이 아파서 1년간 요양소에 지내게 됨에 따라 여자가 잠시 육체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청년을 만난 것이라고 단정지으려 한다. 즉 여자와 청년의 사랑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만남을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자의 외도 정도로 간주해버리고 있다. 잠시 ‘장난’을 쳤던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청년의 경우에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즉 사랑은 정신적인 것이 더 숭고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여자는 ‘성녀’로 칭송하고 있다.
여자는 분명 한 사람이었지만 사내와 청년의 주관적인 평가로 인해 전혀 다른 두개의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관으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고독한 존재이다.
물론 소설 말미를 보면 사내가 청년보다 여자를 더 많이 알고 더 객관적으로 끝을 맺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즉 사내의 말이 전부 사실이고 청년은 잠시 여자의 ‘장난’의 대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은 여자만이 알 수 있다고 본다. 사내는 그 여자가 자신만을 사랑했고, 육체의 욕망을 잠시 탐하려고 청년을 만났던 것으로 인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코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은 아닌 것이다.
2. 허무함
결국 사내가 청년에게 주고 간 여자의 화장한 유골은 한줄기 바람에 모두 날라간다. 하루 네 번씩 오는 기차를 일년 내내 기다렸던 청년에게 작가는 가혹한 결말을 안겨주었다. 이는 이외수 소설의 주된 특징으로 보여진다. 인간세상에서의 욕망을 그는 강하게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무언가 깨달음의 세계를 갈망하지도 않는다. 그냥 끝을 맺는다. 그뿐인 것 같다. 깨달음을 지향하는 것도 하나의 욕망이라서일까? 그는 그저 허무로서 승화시키고 있다. 여자의 유골은 바람에 모두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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