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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신 |  | |
| 김유신은 595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신라에 투항한 금관 가야의 구해왕이며, 할아버지 무력과 아버지 서현은 신라의 유명한 장수였다.
김유신은 14세에 화랑이 되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 삼국 사이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때였다.
629년, 김유신은 아버지를 따라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는 데 가담했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한 신라군의 사기는 뚝 떨어져 있었다. 이 때, 김유신은 혼자 적진에 뛰어 들어 적장의 목을 베어 신라군의 사기를 북돋우었고, 결국 싸움을 이기게 하였다.
그는 644년 상장군이 된 뒤, 백제와의 여러 차례 싸움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647년에는 비담, 염종의 반란군을 토벌했고, 그 해에 무산성과 감물성에 침입한 백제군을 격퇴했으며, 648년에는 백제의 악성 등 12성을 빼앗는 전공을 세웠다.
654년, 진덕 여왕이 재위 8년만에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김춘추가 대를 이어 태종 무열와이 되었는데, 태종 무열왕의 부인은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문희였다. ㅡㅡ;;
660년 상대등에 오른 김유신은, 소정방이 이끄는 13만의 당나라 병력과 함계 신라군을 이끌고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을 쳐서 함락시킴으로써 백제를 멸망시켰다. 또한 667년에는 연개소문이 죽자 혼란에 빠진 고구려 정벌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이듬해인 668년에 나*당 연합군의 대총관이 되었으나 문무왕의 명으로 출전치 못하고 신라를 지켰다.
그러나 이해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망한 후,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 땅을 당나라의 지배하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까지도 넘보려고 하였다. 이에 김유신은 백제와 고구려 땅에 머물러 세력을 뻗치려는 당나라 군사를 물리치는 데 힘써서 백제의 옛 땅과 대동강 이남의 고구려 땅을 수복했다.
60여 년 동안 나라를 위해 헌신한 김유신은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에게 태대각간의 최고 벼슬이 내려졌으며, 흥덕왕은 그를 흥무 대왕에 추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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