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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 |  | |
|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를 읽고..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갔다가 베스트셀러에 이 책이 올려져 있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 부터가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라고 되어 있어서 다른 책들
과는 뭔가 사뭇 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1987년 10월 29일 7시 10분 대만 대북시에서 태어나, 1997년 5월 18일 이른 아침 4시 50분, 암으로 불과 10년을 채우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친 주대관의 짧은 생을 나타낸 책이다.
대만 법무성에서 근무하시는 공무원이신 아버지와 변호사이신 어머니의 사이에서 결혼 6년 만에 태어난 대관은 한살 2개월 때 수천 권의 장서가 놓여 있는 부모님의 서재에 들어가 책을 갖고 노는 걸 좋아했다. 대관은 책을 장난감 대신으로 삼은 것이다. 대관의 동생 상관도 대관과 함께 책을 갖고 놀았다. 대관과 상관은 책을 갖고 놀다가 책을 펼치고는 안에 쓰여 있는 그림과 글씨 등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보고 매우 즐거워했다.
이것이 학습의 첫 걸음이었다.
두번째 단계는 부모님을 선생님으로 보고 호기심이 생기는 대로 부모님께 물어보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는 책을 선생님으로 보는 것이다. <삼자경>, <천자문>, <서유기>, <이솝 이야기>, <노벨문학상 전집>, <세계의 과학자 이야기> 같은 책까지 손에 잡히는 것은 뭐든지 읽어 치워 버렸다. 거기다가 주위 어른들이 내용을 물어보면 정확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다. 대관은 다섯 살 때 이미 <당시삼백수>, 사서를 줄줄 암송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것은 두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자는 것이다. 대관은 세 살, 상관은 두 살을 막 넘겼을 때다. 처음에 어머니는 두 아이가 너무 어리다며 반대했지만, ´단체 생활을 경험하면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설득에 넘어갔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관과 상관은 당장 눈 앞을 빛냈다.
이렇게 열심히 대관과 상관은 유치원을 다니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삼자경>을 조금 외워서 아버지께 암기한 것을 말해드렸다. 아버지는 둘다 굉장하시다며 <삼자경>을 전부 외우면 자전거를 상으로 사주신다고 하였더니 며칠 후, 대관과 상관은 <삼자경>을 거의 다 외워버렸다.
대관이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관의 담임 선생님은 임영근 선생님이다. 첫 날 수업에 임 선생님은 학교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대관은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수업에 집중했다. 이런 대관에게는 선생님의 끈임없는 칭찬이 이어졌다.
어느 날 대관은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관현악단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머니께 바이올린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대관은 관현악단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었다. 겨울방학이 되자, 대관의 가족들과 맹한의 가족들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해외 여행을 가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대관과 상관은 들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관의 가족은 디즈니랜드에도 갔다. 호텔로 돌아오자 둘 다 완전히 뻗었는데, 대관은 바로 침대에 쓰려졌다
그 날 밤, 어머니는 대관에게서 열이 나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도 열이 떨어졌지만 벨리즈로 가는 도중 대관은 40도나 되는 열 때문에 비틀비틀 거렸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어느 날, 어머니가 대관을 씻어 줄 때 대관의 오른쪽 다리 서혜부에 딱딱한 응어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모님은 이걸 보고 병원에 검사를 받아 보았지만, 어디서나 양성 종야이했다.
5월 15일, 대관은 입원해서 절개 수술을 받았다. 불과 7일이었지만,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수술 결과가 나오자 불안했던 가족은 결과가 양성 종양이란 걸 확인하고는 기뻐서 모두 대만 남부를 여행하려고 했다.
단란했던 여행도 끝나고 대북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대관의 수술자국이 부풀어오른 것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대관은 대만대학 부속병원으로 갔다.
대관의 두 번째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이 끝나자 의사 선생님은 눈으로 판단해서는 악성 종양일 거라고 말했다. 잠시 동안 생각한 의사 선생님은 대관의 안전을 위해서 화학 요법을 권했다.
아버지는 화학 요법이 아주 고통스러운 것인 것을 알고 있었다. 대관이 깨어나자 대관은 자신의 병명을 부모님께 물었다. 부모님은 대관에게 자신의 병을 숨길필요가 없다며 대관에게 모두 가르쳐 주었다. 부모님은 대관에게 화학요법은 아주 아프다고 하셨다. 하지만 대관은 화학 요법을 받고 악성 종양과 싸울 거라고 대답했다.
대관은 매달 한 번씩 반드시 화학 요법을 받고, 그 때마다 1주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관은 점점 저항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감염을 걱정한 의사 선생님은 대관이 학교 가는 걸 금지시켰다. 화학 요법으로는 대관의 암세포에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리를 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 있다는 건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마느 대관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척 힘들고, 고통에 찬 일이었다.
서른 번에 걸친 방사선 치료를 하고 나니 대관의 오른족 다리는 완전히 쪼그라들고 변형되었다 하지만 암세포는 여전히 대관의 오른쪽 다리뼈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모님은 어쩔 도리가 없어 할 수 없이 대관의 다리를 자르기로 하였다. 이 사실을 대관에게 알린 부모님은 무척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대관은 거꾸로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다리 하나가 없어진대도 아무렇지 않다며 말했다. 병원 측에서 대관의 다리 절단 수술의 날짜를 결정했다.
1997년 1월 25일, 대관은 오른쪽 다리를 ´한칼´에 잘라내었다. 대관은 창 밖을 보며 어머니께 밖에 나가고 싶다 그랬다. 마침 아버지도 들어왔기 때문에 대관은 부모님과 함께 228 평화 공원에 갔다. 이렇게 해서 1주일 마다 한 번씩 대관은 부모님과 함께 외출을 하게 되었다.
2월 17일 대만대학 병원 의사 선생님들이 대관의 생사가 달린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 회의에는 대관도 함께 참석을 했다. 회의 의장이신 임 선생님이 말했다.
˝만일 의료가 고통만을 안겨 주고 그 뜻을 다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종착역을 평온하게 맞이하는데 방해만 할 뿐입니다. 치료를 포기하는 편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의료팀이 얻은 결론은 더 이상 재수술을 해 봐도 암세포를 완전히 없앨 수 없으니, 환자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재주술을 단념한다는 것이다.
재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망 선고를 받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대관은 잠깐 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손을 들면서 말했다.
˝나, 또 한개만 얘기할게요. 선생님들, 간호사 누나들, 지금까지 절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치료해 주셨어요. 그래서 나,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회의장은 순간 고요해졌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들의 눈은 벌써 새빨개졌다.
5월 16일, 죽음의 신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대관의 침대 옆에 살며시 다가와 손을 뻗치면서
´후훗´하고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5월 17일, 대관은 ´신점 시립 대풍초등학교 제 1회 관현악단 연주회´의 비디오를 보여달라고 했다. 대관은 이 비디오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관은 잠들기 전에 어머니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 난 아빠랑 엄마가 너무 좋아. 난 정말 아빠, 엄마, 상관이랑 헤어지는게 괴로워. 만약 내가 죽으면 꼭 다시 날 낳아줘.˝
하지만 누군들 알았을까? 이 날이 대관 생명의 마지막 날일 줄이야...
주대관이 이 세상에 있었던 시간은 9년 6개월하고 21일이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 다정하고 환상적인 대관의 시들은 대만에 이어, 일본에 소개되었고, 앞으로 여러 나라에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읽힐 것이다. 대관이는 죽었지만, 대관이의 시는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빠, 엄마, 동생아.
내가 죽으면 내가 온 힘을 다해 암과 싸웠다는
것을 암에 걸린 다른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전해 주고, 그들에게 용기와 강한 의지를 갖고
암이라는 악마와 맞서 싸워 달라고 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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