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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옷은 입을 수 없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물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독서량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소설은 꾸준히 읽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시´라는 장르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느꼈다. 가끔씩 편지를 쓸 때 좋은 시를 한 구절씩 인용해서 쓰기도 하지만 시 자체에 별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교과서로 가끔씩 접해보게 되는 유명한 시들. 그리고 그 시들에 언제나 따라붙는 이른바 ´교과서적´인 해석. 여기엔 어떤 수사법이 사용되었는지, 이 단어는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 이 시는 어떤 느낌을 주는지 등등. 시를 시 자체로 읽는 것이 아니라 조각 내서 분석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교과서의 해석들은 마치 ´꼭 이런 식으로 해석해야 해!´하고 강제적으로 말하는 듯했다.
항상 시를 대할 때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시의 숨겨진 뜻을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시를 직접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꼭 어려운 기교를 부려야 시가 되는 것인 줄로 알았다. 이런 걱정들 속에서 ´시´와 점점 멀어지는 나를 느꼈다. 그래서 어렵지 않아 보이는 시집을 한 권 선택했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직접 부딪쳐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 늘 찾으면서 떠나고 / 찾으면서 끝나지 //
(중략)
어디엘 가면 / 행복을 만날까 //
이 세상 어디에도 / 집은 없는데……/
집을 찾는 동안의 행복을 / 우리는 늘 놓치면서 사는 게 아닐까
― 여행길에서 中

바닷가에 가면 조개껍질 / 솔숲에 가면 솔방울 //
동심을 잃지 않고 싶은 내게 / 평생의 노리개였지 //
예쁜 마음으로 주워서 / 예쁜 마음으로 건네면 //
별것 아닌 조그만 게 / 행복을 준다며 / 아이처럼 소리내어 / 웃는 사람들
(후략)
― 조그만 행복 中

자기 고백적인, 종교적인 느낌이 드는 아기자기한 시들. 처음 대했을 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 생활, 작은 곳에서 삶의 보석들을 찾아가는 수녀님의 시는 시를 많이 접해 보지 못한 나에게도 동시처럼 편하고, 쉽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편안함 속에 느껴지는 심오한 무언가가 내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행복들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삶의 진리이지만 좀처럼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나였다. 힘든 학교 생활 때문에 언제나 힘들기 때문에 내 주위엔 행복이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생활해 왔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우리들. 항상 ´빨리빨리´, 너무 먼 곳만 바라보며 뛰어가고 있기 때문에 주위의 행복은 찾아볼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항상 멀리 있는, 보이지도 않는 행복을 바라보면서 살다보니 정작 바로 내 곁에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후회하게 되었다.
바닷가의 조개껍질, 숲에 있는 솔방울. 이런 별것 아닌 조그만 것들도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난 왜 아직까지 그런 행복을 느끼지 못했었는지. 반복되는 일상에 너무 찌들어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좀 더 밝은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번번이 차버렸던 것은 아닌가.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그런 것들에 존재를 부여하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가령 ´손´이나 ´이웃´, ´친구´와 같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가끔씩 잊고 살게 되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우리가 꼭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수많은 것들.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준다.

손톱을 깎다가 / 문득 / 처음 만난 듯 / 반가운 나의 손

매일 세수하고 밥을 먹고 / 청소하고 빨래하고 / 글을 쓰면서도 /
고마운 마음을 잊고 살았구나 / ˝미안해˝
(중략)
눈여겨보지 않았던 / 손마디에, 손바닥에 흘러가는 / 내 나이만큼의 강물을 /
조용히 열심히 들여다보며 / 고맙다 고맙다 인사하는 내게 / 환히 웃어주는 /
작지만 든든한 / 나의 손, 소중한 손
― 고마운 손 中

항상 고마운 손이지만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작가는 이런 시를 통해서 그 고마움을 모두 표현했다. 물론 손이 고맙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그 고마움을 과연 얼마나 느껴보았을 것인가. 우리 주위엔 이런 것들이 많다.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고,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그런 존재들. 이 시를 읽고서 나도 ´이제부터는 작은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야지´라고 다짐했다. 내 주위엔 얼마나 많은 고마운 분들, 고마운 것들이 있을까. 그로 인해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일텐데 말이다.


내가 너무 커버려서 / 맑지 못한 것 / 밝지 못한 것 / 바르지 못한 것 //


누구보다 / 내 마음이 / 먼저 알고/ 나에게 충고하네요 //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 다 욕심이에요 /
거룩한 소임에도 / 이기심을 버려야 / 순결해진답니다 //

마음은 보기보다 / 약하다구요? /
작은 먼지에도 / 쉽게 상처를 받는다구요? /
오래오래 눈을 맑게 지니려면 / 마음 단속부터 잘해야지요 //

작지만 옹졸하진 않게 / 평범하지만 우둔하진 않게 /
마음을 다스려야 / 맑은 삶이 된다고 /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네요 //
― 마음이 마음에게 中

이해인 수녀님의 시 ´마음이 마음에게´는 우리에게 또다른 가르침을 준다. 시는 조용히 타이르는 듯한 조심스러운 말투로 얘기한다.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라고. 욕심을 버리라고. ´작지만 옹졸하진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진 않게´ 살라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가르침. 같은 말이라도 시를 통해서 아름답고 예쁘게 표현한 충고는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 둘씩 받아들여지는 가르침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해서 내가 성숙해 가고 있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이해인님의 시집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오랜만에 갖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다른 때는 별 의미 없이 시간만 보내다 돌아오곤 했던 추석 연휴를 이번 해에는 한 권의 시집과 함께 뿌듯하게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유익했던 점은 ´시´에 대한 거리감을 어느 정도 좁힌 일이다. 항상 멀게만 느껴졌던 시를 더 가깝게 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이런 식으로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시를 읽는 눈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계절이 돌아왔다. 지금이 책 읽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라고들 한다. 그동안 독서를 너무 많이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독서가 소설에만 한정되었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충분하고 다양한 독서를 해야 할 것 같다. 계속 독서를 미루다 보면 고등학교 생활이 무미건조하게 모두 지나가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해 가을이 내 인생에서 꼭 ´책 많이 읽었던 때´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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