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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 있어요
「부탁이 있어요.」
나는 커피를 마셨다. 아주 천천히 그렇게 뜨겁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너무도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찻잔에서 입술을 떼었다. 찻잔에서 입술을 떼고 담배를 입
에 물며, 무슨 부탁이 있니?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이
그러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안해요.」
나는 담배를 들이마셨다. 깊게……. 연기가 다시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정도로 깊게 담배를 들이마셨다
그렇게 들이마신 연기가 다시 밖으로 나올 때쯤,
뭐가 그렇게 미안하니? 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것으로 행동을 대신했다.

「……안되겠어요.」
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냥 지긋이 눌러도 꺼질 담배였지만
재떨이를 뚫어버리기라도 하듯 무리한 힘으로 담배를 짓이겨 껐다.
처음부터 아니였니? 묻고 싶었지만 둘 다에게 너무도 잔인한 질문이라는 생각에
여섯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얼음물을 한 잔 더 주문했다.

「무슨……말을 좀 해봐요.」
얼음을 하나 씹어 삼키고 여섯 번째 담배를 짓이겨 껐다. 안되겠다는데,
나는 아니라는데, 왜 내가 되면 안되는지 묻고 싶었지만
사람이 사람을 떠나가려고 할 때는 그 이유를 묻기보다 먼저 뒷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 마음을 다 위하는 길이 라는 생각에 일곱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먼저……일어날까요?」
열두 번째에 불을 붙이고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의 얼음을
씹어 삼키고 있을 때 물어주었다.
이제는 먼저 일어날게요라고 해도 돼. 라고 대답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이제껏
씹어 삼켰던 얼음이 가슴 속에서 녹아버려 눈으로 다시 나올까봐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천천히, 너무도 천천히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날……게요」
마지막일 텐데, 저 목소리, 저 눈빛, 저 표정 모두가 마지막일 텐데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힘들여 일어나 걸어가는
뒷모습을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떤 담배를 갖다 드릴까요?
아마도 아무거나 갖다 달라고 했을 것이다.
열여섯 번째 담배를 태우려고 했을 때 더 이상 내게 담배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새 담배를
주문했었나 보다.
먼저 나가시던 여자분이 전해 주시라고…….
빨간 색상의 새 담배와 연한 파란색의 편지 봉투가 내 앞에 놓여져 있었다.
무언가 할 일이 있었을 텐데……. 어디선가 나를 원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왜 아무런 생각도 나주질 않는 것일까?

무언가 할 일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지금 저 빨간 색상의
새 담배를 뜯어 태워야 하는지? 먼저 나간 여자분이 건네주었던
연한 파란색의 편지 봉투를 뜯어 보아야 하는지?
얼음물을 한 잔 더 시켜야 하는지? 지금도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도 같은데
돌아봐야 하는지?
저 사람 술 시켰었어? 왜 저렇게 걷는 거야? 귀머거린가, 불러도 그냥 가네?
담배 하나 굳었다. 이 편지 뜯어봐도 되나?
그러지 마세요. 자기 정신도 아닌 것 같던데. 다시 오면 돌려줘요.
무슨 편지 봉투가 이렇게 예쁘지! 이걸 무슨 파란색이라고 해야 되는 거야?

〈그렇게도 많이 사랑을 고백했으면서도 이제서야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큼이었는지 알것 같아요.
내가 왜 당신에게 사랑했어요. 라는 과거형을 써야 하는지
하늘에 원망도 해보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요.
오늘 나는 아마 당신에게 몹쓸 짓을 하고 돌아서게 될 겁니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원망하지 않으시겠지요?

부탁이 있어요. 당신껜 매우 버거운 부탁이 되겠지만 들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부탁드려요. 저를 미워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랑했던 당신……,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용서는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요.
제발 저를 원망하고 미워해 주셨으면 해요.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히 살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나를 용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어떻게 건네야 할지…… 건네드리는 게 잘 하는 건지.
당신을 먼저 두고 일어서는 내 표정이 너무도 궁금하지만
나의 이기적인 표정을 당신의 눈동자를 통해 볼 자신이 없어
인사 없이 일어서겠습니다.
안녕히……, 제발 안녕히……, 영원히 안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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