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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관계´를 읽고
― 관계 속에서 찾는 희망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고래사냥이라는 노래의 앞부분이다. 덜덜덜 떨리는 선풍기 두 대가 전부인 학교에서 땀 뻘뻘 흘리며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내 뇌리 속을 스치는 노래이다. 집 - 학교 - 학원이라는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 난 그 틀이 ´감옥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가고 싶지만, 그럴만한 용기와 돈이 내게는 없다. 우리의 이런 반복되는 삶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내 앞에 있다. 바로 안도현님의 ´관계´라는 책이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동물과 자연 등 많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자신이 ´소설과 동화와 에세이와 시의 중간 어디쯤´이라고 이 글의 성격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글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하는 그의 글에서 난 자유를 느끼고, 일탈에 대한 약간의 대리 만족을 경험한다. 어둠 속에서 느끼는 한 줄기 빛처럼 나의 마음을 감싸는 그의 많은 글 중 나의 시선을 가장 오래 끌었던 글은 ´버들치를 기르는 시인´이라는 글이다.
시인은 시 쓰기를 좋아해서 붙여진 그의 별명이다. 그에게는 ´글쟁이´, ´작가´같은 좋은 별명 외에도 ´현실부적응자´, ´속없는 인간´같은 나쁜 별명도 있다. 세상은 그래 왔다. 꿈꾸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이들을 세상은 항상 백안시했다.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인 같은 이들이 더 인간답고, 아름답지 않은가? 이 사회에 길들여져서 이 속의 모순과 불의를 보지 못하는 우리는 어쩌면 미운 오리 새끼를 놀리는 오리들인지도 모른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어서 아름답게 날아갈 때, 그 밑에서 꽥꽥거리며 후회하는 오리들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시심을 가다듬기 위해 산에 갔다. 그 속에서 젊은이들은 버들치를 피라미라고 하면서, 매운탕을 끓여 먹자고 한다. 시인은 마음 아파 한다. 속이 뜨끔했다. 난 자연 속에 들어가면 바보가 된다.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고, 우리집 길가에 매일 보이는 가로수의 종류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산에서 싱그러운 산내음을 맡으며 나뭇잎이나 곤충들을 관찰하는 것보다 방에서 포켓몬을 보며 그들의 이름을 외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그렇게 살아 왔다. 사람과 자연사이가 이렇게나 많이 멀어졌다. 이렇게 살다가 몇 십년 후에 우리 자식들은 민들레와 개나리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사람도 자연의 많은 구성원 중의 하나일 뿐이다.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고,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인 자연. 이제 우리도 서서히 자연과 친해지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집에서 버들치를 기르자고 한다. 예쁜 열대어도, 금붕어도 아닌 못생긴 버들치라서 가족들은 반대한다. 그러나 1등급 물 속에서만 산다는 말에 가족들은 찬성한다. 1등! 우리는 왜 이렇게 1등에 목을 매고, 1등만을 바랄까? 언제인가 이런 말을 들었다.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 맞는 말이다. 올림픽을 봐도 금메달만 기억하고, 학교에서도 1등은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1등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음악 시간에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학교 2학년 230명쯤 되는데, 그 중에 1등은 하나이고, 나머지는 229명이다. 1등이 정상적이냐, 나머지가 정상적이냐?˝
물론 나머지가 정상이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목표로 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지만, 무조건 ´1등! 1등!´하면서 광적으로 1등에 매달리는 우리 사회 풍조는 잘못된 것이다. 1등도 나머지도 인간으로서는 평등하게 대접받는 사회! 우리가 바라야 할 올바른 사회의 모습이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사는 버들치를 울타리 속에 가두었다고 미안해 하지만, 버들치는 시인 역시도 감옥 속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발길이 닿는 대로 갈 수가 있다고 착각을 하지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는 곳까지가 감옥의 내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가고 싶은 곳을 지금 막바로 갈 수가 없다면 그건 감옥 속에 있다는 뜻이지요.˝
왜 하필 감옥일까? 감옥이라는 곳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죄의 대가로 가는 감옥은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삶을 감옥이라고 표현하다니, 버들치의 눈에는 우리가 참 불행해 보였나 보다. 하긴, 나도 간혹씩은 내 삶이 감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감옥 속에 살고 있나? 나는 사회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같은 시간에 잠드는 사람들. 모두 똑같은 모습의 나날들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규칙적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같은 존재가 아닐까? 사회가 통제하기에 사람들은 너무 많다. 네모난 집에서 나와서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학교에 가서 네모난 책으로 네모난 생각을 배우는 아이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서로의 꼭지로 서로를 찌른다. 동그란 웃음을 원하지만 어색하고 네모난 웃음을 짓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네모난 감옥 속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듯 우리 모두가 똑같은 모습의 생활을 하는 삶이 감옥 속에 죄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감옥이라고 생각하던 곳은, 사실은 감옥이 아니라, 사랑의 밭이었다. 사람들이 사랑을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두는 사랑의 밭이었다. 모두 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일상 생활의 공간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과의 사랑을 키워간다. 이 밭에는 사랑이 있고, 끈끈한 정이 있다.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 밭에다 키워놓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학교에서 지겨운 수업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는 이유는, 나에게 기대를 가지고 나만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나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 주시는 선생님 때문이다. 어른들이 직장을 벗어나 일상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다. 이 사랑의 밭이 없는 사람은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안식처도 없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나만의 자유를 택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의 삶은 참 소중하다. 가끔씩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 무조건 달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나?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은 참 많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 관계 속에서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안도현님의 ´관계´는 이렇게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갖고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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