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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그리고 원균
-김 종 철-

제 목 : 원균 그리고 원균
저 자 : 고 정 욱

우리가 충신을 일컬을 때는 성웅 이순신을 세운다. 그리고 뒤에 원균은 악역으로, 간신 배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원균 그리고 원균]이라는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와 책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상당한 호기심과 충격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선조실록<34. 1. 17>에 ˝선조는 원균, 이순신, 권률 이 세 사람을 선무 일등공신으로 봉(封)하면서 말했다.
˝원균은 패전한 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고 있으나 내 생각은 다르다. 원균은 지용인(智勇人)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가지에 능하면 나머지 전부를 칭찬하고, 한 가지에 실패하면 나머지 모두를 모함하는 경향이 있지만, 원래 영웅은 한 두 가지의 성패만을 가지고 논하는 법이 아니다.

원균은 싸움에는 반드시 앞장을 섰으니 그 용전(勇戰)을 가히 알만하다. 그 후 칠천(漆川)에서 패한 뒤 모두들 다투어 그를 비난하지만 그 패전은 원균의 잘못이 아닌 조정에서 너무 재촉하여 그를 밀어낸 탓이다. 나는 원균의 충성된 마음이 후세에까지 밝혀지지 아니할까 두렵다. 그렇게 될 경우 지하에 있는 그가 어찌 그 죄에 복종할 것이며 또한 얼마나 원통하게 생각할 것인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작가는 ˝원균의 공을 가로채고 그 아들까지도 모함하는 이순신… 밝히고 싶지 않은 역사의 사실입니다˝라고 일성(一聲)을 지르며 원균의 성품과 그의 용맹스러운 공과를 역사적인 기록을 토대로 상세히 밝혔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임진해전 전부를 이순신이 총지휘하였고 빛나는 승전은 모두 그의 공로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우리들의 인식에는 ′이순신=임란 해전의 승리자′라는 등식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물론 이순신의 공적이 탁월하고 그가 선무일등공신임은 세상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며 공감한다. 그러나 [원균 그리고 원균]을 읽고, 그토록 이순신을 괴롭히고 사사건건 그를 모함했으며 왜군에게 패배했다고 기억되었던 원균이 일등공신인 세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 그리고 그 뒤에 있었던 알고 싶지 않은 내용의 전개 속에서 원균의 충성스러운 공적은 새로운 역사적 시각에서 이순신에 버금가는 충신으로 추앙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원균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용맹과 지혜를 견비한 인재였다. 그런데 영웅으로서 이순신의 빛나는 삶을 꾸미는 데에는 오비이락으로, 그와 능력이 버금가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또한 그가 죄를 짓고 자리를 떴을 때 뒤를 이어 수군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원균이 악역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후기에 내려오는 딱지본 고소설에서도 한결같이 원균은 이순신을 괴롭히는 숙적으로 그려지고, 근대에 이르러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안보논리에 힘입어 영웅, 더 나아가 성웅으로까지 추앙 받는 이순신의 그늘에 가려 원균은 늘 고독한 악역, 비열한 간신 배로 남아 있었다.

선조실록에서 선조의 ˝한 가지에 능하면 나머지 전부를 칭찬하고, 한 가지에 실패하면 나머지 모두를 모함하는 경향이 있지만, 원래 영웅은 한 두 가지의 성패만을 가지고 논하는 법이 아니다.˝라는 말대로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이러한 성향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비록 사람이 한 가지를 잘못하여도 나머지 잘했던 것을 기억하는 여유와 그에게도 장점이 있음을 살피어 칭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 깊숙이 원균이라는 영웅이 자리잡게 되었다. 원균은 아무리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주저함이 없었고, 항상 앞장서서 주어진 임무를 이루고 마는 용맹스러운 장군이었으며, 공과를 탐하여 다투기를 삼가고, 오직 나라를 염려하여 장열하게 산화한 신화 같은 존재였음을 알게되었다.
kimjc19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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