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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아침 -도종환-
월세 이천원짜리 단칸방에 여섯 식구
모여 살 때보다 더 힘들었던 건
실패한 아버지 찬아 어머니마저 동생들 데리고
서울 변두리로 떠난 뒤 소식 끊겨
양식이 바닥났을 때였다
외로움보다 더 서러운 건
어쩌면 배고픔인지 모른다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보다 더 뼈아픈 건
뱃속을 후벼파는 허기와 공복의 칼끝
푸는 하늘이 싫어 어두운 마당 그늘 내려보다
주먹으로 땅을 치던 열 몇살의 나를 찾아준 건
불량서클로 낙인 찍힌 내 친구들이었다
어둠속에서 몇몇이 왁자지껄 너스레를 떠는 동안
부엌에 몰래 던져놓고 간 한말의 쌀
그 쌀자루를 만지며 나는 울었다
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고 때론 몰려다니며
패싸움도 하던 친구들이었지만
나는 평생 그 친구들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배고픈 설움보다 더 큰 서러움은 없다
배고파 눈물 흘려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밥 한숟갈을 입에 넣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안다
배고픔 앞에는 백만 마디 말이 필요없다는 걸
배고파 울다가 그 울음도 허기로 소리가 끊어지고
지쳐 쓰러진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앞에
억만 가지 변명과 세상에 대한 설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북녘의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한다
감자 한덩이마저 떨어지고
멀건 죽조차 입에 대보지 못하다
끊어진 배급 몇날 몇십일을 기다리다 죽어가던
그 아이들이 바라본 하늘은 무슨 빛이었을까
남쪽의 일찍 핀 꽃잎을 적시는 봄비가
북쪽의 배고픈 형제들 머리 위로도 떨어진다
봄나들이 웃음소리 곁으로 남에서 부는 바람은
죽은 자식 낮은 땅에 묻고 돌아오는 북녘
어버이 헐렁한 옷소매 사이로도 불리라
어제 내린 봄비에 꽃잎이 지는 스산한 아침
차마 밥 한숟갈 목에 넘어가지 않는 남쪽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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