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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부치는 철학적 푸념


가을에 부치는 철학적 푸념 /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


결혼의 계절 가을을 맞아 (역설적으로) 우리사회의 이혼율 급등을 걱정해 보자.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1년도 이혼율은 1970년에 비해 7배나 상승, 3쌍 중 1쌍이 이혼에 이른다고 한다.

이혼은 사회구성의 기본단위인 가정을 파괴하고 직장에서는 당사자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급등하는 이혼율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생탐구의 대가인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서두에서 (행복의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불행의 사유는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밝혔다 . 이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말못할 사연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제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그가 도달한 철학적 성숙의 함수라는 사실이다.

고독과 불안을 탐구한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자유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고독과 불안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궁극적인 자유는 어느 누구, 어느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을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의지할 곳이 없어지면 인간은 고독해지고, 고독은 결국 불안 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인간은 자유의 추구를 어느 선에서 멈추고 그 이상의 자유는 (다른 가치를 살 리기 위하여) 스스로 헌납해야 한다. 가정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결혼 전에 각자가 누리던 자유를 상당부분 자진하여 헌납해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이런 논리는 직장이나 국가, 국제사회 등 모든 조직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로 통할 것이다. 조직구성원들이 무분별하게 자유를 추구할 때 그 조직은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에 있는 키에르케고르의 무덤과 동상 앞에는 지금도 ´당신이 쓴 책 감명 깊게 읽었소´ 하는 감사의 메모와 꽃송이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의 행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외에도 다른 조건이 또 필요하다. 우선 짧은 사랑과 긴 사랑을 구별할 줄 아는 지적(知的) 성숙이 그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같은 영화에 묘사된 사랑은 모두 짧은 사랑들이다. 젊은 남녀 사이의 사랑은 (마치 양전기 와 음전기가 서로 끌리듯) 자연발생적으로 점화된다.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 열렬한 사랑을 나누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50여 년을 같이하는 긴 사랑에는 별도의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 조건을 생떽 쥐베리는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데 있지 않고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데 있다”고 표현했다. 한 사람은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다른 한 사람은 돈과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앙드레 지드는 ˝사랑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아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아서 끌리는 힘, 즉 인간적 매력은 우리 삶에서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상대방이 계속 자기를 좋아하도록 외모뿐만 아니라 교양, 지성, 가치관, 도 덕성 같은 인간적 매력을 가꾸는 일은 긴 사랑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물리학에서는 초기조건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한다. 한라산에서 수평선을 향해 공을 던지는 경우를 가정, 초기조건을 설명해보자. 공의 초기속도가 (물리학적 계산에 의하여) 초속 8km에 이르지 못하는 한, 공은 지구의 중력으로 계속 땅에 떨어진다. 그러나 초기속도가 8km가 되면 공의 원심력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공은 떨어지지 않고 (인공위성처럼) 지구를 계속 돌게 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도 지구생성 당시 초기조건의 결과이다. 이처럼 초기조건은 궁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본요소가 된다.

혼돈(chaos)이론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짓이 초기조건 여하에 따라 시카고의 날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자유의 헌납, 가치관의 일치, 짧은 사랑과 긴 사랑의 차이 등에 관한 지적(知的) 성숙수준 여하가 결혼 후 행복의 수준을 결정하는 초기조건이 될 수 있다.

사색의 계절 가을을 맞아 우리 모두 ˝생각하는 갈대”가 되어 그것이 가정에서는 행복으로, 직장에서는 생산성향상으로 이어지기 기대한다.


<윤석철 서울대 경영학 교수 yoonsc@plaza.snu.ac.kr>

* 자료출처 : 매일경제신문 200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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