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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맛이야 / 김민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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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맛이야 ] - 김민숙 / 소설가
서울 나들이를 가느라 막 마을을 빠져나가다가 장례 행렬을 만났다. 나흘 전에 돌아가신 이장댁 할아버지의 상여임에 틀림없다. 차를 길 옆으로 빼고 잠시 나와서서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틀전 상가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는 온동네 사람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청년회 사람들이 마당에 비닐 하우스를 치고 멍석을 깔고 손님을 맞고 주차 정리를 했다. 부녀회 회원들은 음식 준비에 팔을 걷었다. 두레의 풍습이 아직도 가장 강력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장례인 것이다.
이곳 세월리로 이사와서 햇수로 5년이 지났지만 상여 행렬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만장을 든 동네사람들이 앞장서고, 그 뒤로 장정들이 둘러멘 꽃상여가 간다. 색색의 화려한 꽃으로 치장한 상여는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그 위에 선 상두꾼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구성지게 선소리를 한다. 예전에 쓰던 상여가 낡아서 지난 해 동네에서 추렴, 새로 준비했다더니 바로 저 상여인 모양이다. 그 뒤로 소복을 한 상주들이 줄줄이 따르고 그 뒤를 동네 사람들이 잇고 있다. 상주의 한 사람인 혜연 엄마가 나를 보고 잠시 행렬에서 빠져나와 두 손으로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고 다시 행렬로 돌아간다. 행렬이 동네 어귀에 선 느티나무 사이로 사라진 뒤에야 나는 다시 차를 몰아 길로 나섰다. 아마 동네 뒷산에 있는 심씨네 선산 양지바른 곳 남한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묻힐 터이다. 번성한 자손과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배웅하는 마지막길은 호화스럽기조차하다.
어머니를 화장한 자식이라 일찌감치 장례식없이 그냥 화장해 뿌려달라고 유서까지 써놓은 내게도 그 상여행렬은 부럽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곳이라고 변화의 물결이 영원히 비켜갈리 없으니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대에 병원이 아닌 당신의 집 안방에서 자손들이 지켜주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고, 영안실이 아닌 당신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집 가까운 선산 경치 좋은 곳에 유택을 잡는 것은 이곳 시골 사람들만이 누리는 가장 커다란 사치이리라.
새 상여를 사기 위한 추렴에도, 그 뒤 열었다는 동네 잔치에도 뜨내기인 나는 끼지 못했다. 나중에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한해에 한 번 열리는 동네 회의나 풀베기 같은 데는 연락이 오는데 상여 추렴에만 빠진 것은 아마도 내가 이 동네에 눌러 앉아 삶의 마지막을 맞으리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주지 못한 탓일 것이다. 사실은 나 스스로도 그것에 관한 확신이 없다. 들만큼 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주에 있다는 역마살 탓인지 불쑥불쑥 보따리를 싸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자주 있다. 그 어쩔 수 없는 떠돌이 성정을 그나마 붙들어 주는 것은 내 부양가족인 개 장군이와 선화, 그리고 몇 달전부터 나를 자기네 식당 주방장으로 정해버리고 하루에 두 번씩 찾아와 끼니를 때우고 가는 들고양이 여섯 마리, 또한 동네 사람들의 따듯한 인정인 듯하다.
지난 2년간은 김장을 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귀찮아서 오늘 내일 미루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가 김장을 하지 않은 게 온동네에 소문이 나서 이집저집에서 김치를 보내왔고 그게 너무 많아서 나처럼 게으른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올해는 아예 나누어 줄테니 하지 말라는 이웃집 할머니의 지시를 받았다. 미안해서 김장하는 날 가서 어정쩡 돕는 시늉을 하다가 점심까지 얻어먹고 한 양동이 가득 얻어왔다. 동짓날에는 팥죽도 한 냄비 얻어오고 고추장 담그는 날에는 고추장도 한 병 얻었다. 얻어먹고만 있자니 미안해서 내 없는 솜씨로도 무언가 만들어 나눌 궁리도 하게 된다.
지난 번에는 군에서 백일장이 열려서 심사를 하러 갔다. 나중에 보니 연전에 세월초등학교 글짓기 반에서 만났던 하연이가 뽑혔다. 반가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하연이의 진솔한 글 내용이 가슴을 때렸다. 동생과 함께 이웃집 혼자 사는 할머니의 김장을 도운 이야기였다. 나중에 이웃 혜연엄마에게 물었더니 하연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하연이 엄마는 바느질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열심히 다닌다고 한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글을 낳은 것이다.
독거노인들에게 보낼 김장을 하러 부녀회 회원 몇이 모인다며 나서는 혜연 엄마에게 내가 말했다.
“나도 독거노인인데 나는 안 줘?”
“선생님도 면사무소에 가서 독거노인으로 신고하세요. 그럼 줄 거예요.” 우리는 서로 어깨를 치며 푸하하 웃었다.
문화일보[여론여론] 2001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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