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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 결혼의 조건 / 김순덕
[ 사랑의 조건, 결혼의 조건 ] - 김순덕 기자


미국에 와서 가장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우리 TV드라마를 못본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미국 TV를 보는 척 해도 드라마는 역시 한국 드라마가 제일이다. 요즘 나는 인터넷으로 드라마 대본보는데 재미를 붙였다. ‘그 여자네 집’과 ‘가을에 만난 남자’를 열심히 봤고 요새는 ‘겨울연가’에 흠뻑 빠져있다.
드라마를 볼 때는 나를 여주인공과 동일시하며 울고웃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인지, 결혼과 가족에 대해 강의를 들어서인지 이제는 왜 저 여자가 저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까, 둘이 결혼하면 잘 살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한낱 동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생활인들은 알고 있다. 엄청 다른 기질과 배경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어떻게 문제없이 산단 말인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를 추구하는 이들이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화를 다시 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여자네 집’에서 김남주와 차인표가 파국으로 끝난 것은 필연이었다. 작가는 1년여후 사랑을 재확인한 두 사람이 다시 결합한다는 여운을 남겨놓았지만 과연 잘살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일을 하면서 더 행복을 느끼는 여자와 따뜻한 가정에 더 비중을 두는 남자는 삐걱댈 수밖에 없다.

한 미국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남편과 현대적인 성역할 개념(무릇 여자는 이러저러해야 하고, 남자는 저러저러해야 한다는데 얽매이지 않은 것을 뜻한다)을 지닌 아내의 결혼 적응이 가장 낮다고 했다.

‘겨울연가’에서 티격태격하던 어린 최지우와 배용준은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심술궂게 말하자면, 그들이 맺어진다고 해서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성장배경까지 비슷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사랑과 결혼에 관한 신화와 현실▼
절대 권력이 절대 부패하듯, 뜨거운 열정은 반드시 식게 되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든가,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건 현대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학자들은 과학적 연구결과를 대며 주장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사실은 강한 성적 욕망이나 두려움, 승인에 대한 갈망”이라며 ‘그 사람’과의 황홀한 마비에 빠져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어버릴 뿐이라는 학자도 있고, 아무리 사랑하지 않아 세상없더라도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없는 한 결혼이 행복하게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심리치료실을 찾은 서른한살의 사업가인 바트도 그 한 예다. 그는 스물세살에 미친 듯한 사랑에 빠져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아름다운 아내를 집안에 앉혀놓은 뒤 그는 일에 열중했다. 아내는 불만인 듯 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일을 하는데? 다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아내는 이혼을 선언했고, 바트는 그가 사랑이라고 자신했던 감정이 실은 다른 여러 가지 감정의 복합체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후회하고 있다. “10년전에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하고.

▼행복한 부부들을 들여다보면▼
죽도록 사랑한 끝에 결혼을 했든, 덤덤한 상태로 결혼을 했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 가족학자는 발표했다.

남편의 이야기
- 아내는 내 가장 좋은 친구다.
- 나는 아내를 한 인간으로서 좋아한다.
-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 우리는 함께 웃는다.
- 우리는 삶에 대한 철학이 같다.
- 우리는 성적 태도가 일치한다.
- 나는 아내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는다.

아내의 이야기
- 남편은 내 가장 좋은 친구다.
- 나는 남편을 한 인간으로서 좋아한다.
-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 우리는 함께 웃는다.
- 우리는 삶에 대한 철학이 같다.
- 우리는 애정을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해
동의한다.
- 우리는 생각과 느낌을 함께 이야기한다.

따로따로 물은 결과다. 놀랍지 않은가. 부부의 생각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그들은 설령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을 친구로 사귀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드라마에선 사사건건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다가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적으로 좋아할수 없는 사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나이가 먹은 뒤에도 후회하지 않고 사는 이들은 많지 않은게 현실이다.

▼사랑과 결혼엔 조건이 있다▼
공부한답시고 미국까지 와서 배운게 겨우 그거냐고 한다면 할 말없지만, 어른 말 들어서 손해보는 일 없고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게 내가 알아낸 거다. 사랑과 결혼에선 특히 그렇다.

사랑이야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시작했다고 해도(그것도 알고 보면 사랑에 빠질만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결혼은 자라난 환경부터 재산 학력 가치관까지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배경이 비슷한 사람끼리 해야 바람직하다는게 이 방면에 정통한 학자들의 결론이다.

그냥 비슷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가치관과 감정과 갈등에 대해서는 결혼전부터 결혼후 20년 30년, 아니 죽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말’로 나누어야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다. 다 내 맘같겠거니, 하고 이심전심만 믿다가는 점점 맺히기만 할 뿐이다. 일본에서 정년이혼 황혼이혼이 늘고 우리나라도 열심히 쫓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지 싶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련함이야 누군들 없으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더라도 한때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맺어지지 못한 아쉬움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설령 지지고 볶다 이혼으로 끝나더라도. 후회를 해도 내가 한다며 모두들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면 세월이 흐른 뒤에 왜 그때 부모님 말씀을 안들었을까, 가슴을 칠 확률이 더 많다.

아무리 행복한 결혼에 대한 이론이 무성해도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을 가슴이 못받아들일 수 있고,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그 덕에 학자들이며 가족문제 상담가며 심리치료사들도 먹고 사는 것이고.

www.donga.com. 김순덕 기자의 뉴욕이야기(200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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