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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사전 (4) <이외수>


광신자 :
오직 지상에서 자신만이 신의 유일한 사도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모든 인간들을 악마로 규정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굳힌 사람. 그들은 대개 제일 먼저 자신의 가족을 팽개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모순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믿고 있는 신만이 전지전능하며 남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무지무능하다고만 단정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타인의 종교적 성숙도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종교인이다. 그들은 천국에 대해서보다는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고 구원에 대해서보다는 멸망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용서에 대해서보다는 심판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성자들의 행적보다는 죄인들의 행적을 더 많이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배후에는 대체로 욕망에 가득 찬 악마가 신의 얼굴을 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기주의적인 신앙심에 부채질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름 :
일 년 중에서 태양이 가장 심하게 발작을 일으키는 계절이다. 구름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바다가 빈혈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매미들이 발악적으로 울어댄다. 길바닥이 타고 있다. 태양이 쏘아대는 빛의 화살들이 모든 사물들을 살해한다. 수목들이 지친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빨간 토마토가 익고 있다. 개들이 혀를 빼문 채 낮잠에 빠져 있다. 때로는 사나흘씩 비도 내린다. 밤이면 신음 같은 천둥소리가 잠을 설치게 만들고 새도록 은백양나무 숲이 흐느끼는 소리도 들린다. 문득 지난 여름의 잔해처럼 떠오르는 사랑의 편린, 보내지 못한 편지마다 곰팡이가 부식하고 있다.

성냥개비 :
본디는 한 그루 나무였다. 지금은 전신이 억만 갈래로 쪼개져 전생의 업보를 다 털었다. 마지막 희디흰 뼈 하나를 모두 태우고 적멸로 돌아갈 때까지 충열된 눈빛으로 암송하는 나무관세음보살.

지렁이 :
우울한 지하의 방랑자. 지상으로 나오면 체액이 말라 질식사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상의 여러가지 동물들이 지렁이를 즐겨 먹는다. 공중을 나는 새들도 지렁이를 즐겨 먹고 물 속을 헤엄치는 고기들도 지렁이를 즐겨 먹는다. 땅거죽을 기어다니는 개미들도 지렁이를 즐겨 먹고 땅 속을 기어다니는 두더지도 지렁이를 즐겨 먹는다. 그러나 지렁이는 절대로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런 무기도 휴대하고 다니지 않는다. 이빨도 없고 발톱도 없고 독침도 없다. 완벽한 비폭력주의자다. 징그러움과 꿈틀거림이 무기라지만 그것으로는 적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먹다가 반만 남겨 놓으면 다시 한 마리의 완벽한 지렁이로 복원된다. 암수 양성을 모두 한 몸 안에 지니고 있으며 길이가 같은 지렁이끼리 배우자를 삼아 서로 자세를 엇바꾸어 사랑을 나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에게 대지의 창조자라는 찬사를 보낸 바가 있는데 이는 지렁이가 박토를 옥토로 바꾸어 놓는 토양의 마술사이기 때문이다. 지렁이 한 마리가 일생 동안 토해내는 흙의 양은 수만 톤에 이르며 아무리 척박한 산성 토양도 기름진 알카리성 토양으로 변모된다. 만약 하나님이 지렁이를 이 세상에 보내시지 않았다면 지구가 오늘날 이토록 아름다운 초록별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막 :
바람의 무덤.

콩나물 :
음지에서 물만 먹고 자란다. 거적대기 하나를 이불 삼아 맨살을 부비며 오손도손 서민으로 살아간다. 머리가 모두 샛노란 것은 햇빛을 간절히 그리워 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가슴 안에 샛노란 해를 하나씩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 :
새벽에 내린다. 만물이 깊이 잠든 안식의 새벽에 소리없이 내려와 꿈을 적신다. 신神의 서늘한 입김이다. 생명의 속삭임이다. 사물들의 표면에 닿아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은 땅에 스미어 옹달샘을 만든다. 옹달샘은 그 흐름을 다하여 바다에 다다른다. 이승은 바다의 투명한 미립자다.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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