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면목 面目 |  | |
|
면목 面目
[字解]
面(낯 면)
目(눈 목)
[意義]
얼굴과 눈이라는 뜻으로, 체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出典]
사기(史記) - 항우본기(項羽本紀).
[解義]
한(漢)의 유방(劉邦)과 초(楚)의 항우 사이에 천하를 둘러싼 쟁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의 수세에 몰린 항우는 20여 기밖에 남지 않은 기마병을 이끌고 장강 기슭에 도착해서는 동쪽으로 오강(烏江)을 건너려고 하였다.
이때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강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우에게 말하였다.
˝강동(江東)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 천 리요, 백성이 수십만 명에 이르니 그곳 또한 족히 왕업을 이룰만한 곳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나라 군사가 이곳으로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는 못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항우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데 이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또한 내가 강동을 떠나 서쪽으로 갈 때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 하였는데, 설사 강동의 부모형제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아 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面目)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설사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정장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후덕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이 말을 탔는데, 이 말에 대적할 것이 없었으며 하루에도 천 리를 달렸다. 내 차마 이 말을 죽일 수 없어 그대에게 주겠노라.˝
항우는 부하들로 하여금 모두 말에서 내려 걷도록 하고는 손에 짧은 무기만을 들고 싸움을 하게 하였다.
이때, 한나라 군사 중에 옛날 그의 수하였던 여마동(呂馬東)이 있음을 보고는 ˝내가 들으니 한나라 왕이 나의 머리를 천금과 만호의 값으로 사려 한다고 한다. 내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리라˝ 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이와 같이 면목은 염치와 같은 의미인데, 면목이 없다는 말은 스스로 자기 잘못을 뉘우쳐 사람다움을 지켜 나간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
[항우 項羽(BC 232~BC 202)]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유방(劉邦)과 천하를 놓고 다툰 무장.
이름은 적(籍), 우(羽)는 자이다. 임회군 하상현(臨淮郡 下相縣:江蘇省) 출생.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젊은 시절 ´문자는 제 이름을 쓸 줄 알면 충분하고, 검술이란 1인을 상대할 뿐인 하찮은 것´이라 하고, 회계산(會稽山)에 행차하는 시황제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저 녀석을 대신해 줄 테다´라고 호언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BC 209년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으로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숙부 항량(項梁)과 함께 봉기하여 회계군 태수를 참살하고 인수(印綬)를 빼앗은 것을 비롯하여 진군을 도처에서 무찌르고, 드디어 함구관[函谷關]을 넘어 관중(關中)으로 들어갔다.
이어 앞서 들어와 있던 유방과 홍문(鴻門)에서 만나 이를 복속시켰으며, 진왕 자영(子拏)을 죽이고 도성 함양(咸陽)을 불사른 뒤에 팽성(彭城:徐州)에 도읍하여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각지에 봉한 제후를 통솔하지 못하여 해하(垓下)에서 한왕(漢王) 유방에게 포위되어 자살하였다.
[出處]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