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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안제미(擧案齊眉)◈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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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안제미(擧案齊眉)◈
[字解]
擧...들 거
案...밥상 안
齊...가지런할 제
眉...눈썹 미
[意義]
밥상을 눈 위로 받들어 올린다.
즉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공경하여 받들어 올림을 일컫는 말.
[出典]
후한서(後漢書) - 양홍전(梁鴻傳).
[解義]
부풍군 평릉현에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자(字)는 백란(伯鸞)으로 양홍(梁鴻)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현의 맹가(孟家)에 몸이 뚱뚱하고 얼굴도 못난 맹광(孟光)이라는 딸이 있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 혼기가 훨씬 지났는데도 좀처럼 시집을 가려고 하지 않자 부모는 근심이 되어 그 연유를 묻자,
˝양백란(梁伯鸞)같은 훌륭한 분이라면 기꺼이 시집을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양홍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7일이 지나도 양홍은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날 색시가 하도 궁금하여 자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 연유를 캐묻자 양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바랬던 여자는 비단옷을 입고 분을 바르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 함께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
이 말을 듣자 양홍의 색시는 말했다.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당신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양홍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그녀에게 덕요(德曜)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둘이서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 시 속에 왕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발각되어 장제(章帝)에게 쫓기게 되자 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 (皐白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 지기가 되어 지냈다.
〈양홍전〉의 한 구절에, ´매귀처위구식 불감어홍전앙시 거안제미(每歸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늘 밥상을 차려 양홍 앞에서 감히 눈을 치뜨지 않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바쳤다.)´라는 말이 보인다.
또 고백통은 이 부부의 사람됨을 예사롭지 않게 여겨 여러 면에서 도와주어 양홍이 수십 편의 훌륭한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남편의 인품을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따르고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남편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학문을 파고들어 명저(名著)를 저술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 내외가 반듯한 인생을 완성한 것이다.
[參考]
황보밀(皇甫謐)의 ˝烈女傳˝에서의 내용도 위의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맹광은 매일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 치마를 입고서 남편을 따뜻이 맞았으며, 밥상을 눈썹 높이 들어 공손히 남편에게 식사를 권했다.
常荊釵布裙每進食 擧案齊眉(상형재포군 매진식 거안제미)
이 맹광의 고사에서 허술한 옷차림을 가리켜 형채포군(荊釵布裙)이라하고, 부인이 예절을 다해 남편을 섬기는 것을 거안제미(擧案齊眉)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형처(荊妻)라는 말도 생겼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형처(荊妻)란 남에게 자기 아내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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