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凍足放溺(동족방뇨) |  | |
|
[한국성어] 凍足放溺(동족방뇨)
[字解]
凍(얼 동)
足(발 족)
放(놓을 방)
溺(오줌 뇨:尿同)
[意義]
언 발에 오줌 누기란 뜻으로,상황이 급박해서 그 일을 모면하기 위해 임시변통으로 한 일이 결과적으로 더 나쁘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出典]
순오지(旬五志)
[解義]
순오지에 ˝凍足放溺 言人姑息之計(동족방뇨 언인고식지계)˝라는 말이 있다.
˝언 발에 오줌누기란 사람들이 고식지계(姑息之計)를 취함을 일컫는 말˝이란 뜻이다.
고식(姑息)이란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서 당장에는 탈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가리키는, 곧 임시방편밖에 안되는 계책을 의미하는 말이다.
미봉책(彌縫策)이라는 말과 상통된다.
˝고식지계˝란 것이 물론 어떤 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임기응변으로 소용되어지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 속담에 ˝벼룩의 등에 육간대청(六間大廳)을 짓겠다˝,˝우물 옆에서 말라 죽겠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도량이 좁고 상황판단이 느려서 하는 짓이 답답하고 옹색한 사람을 풍자하여 쓰는 말이다.
그래서 고식지계란 것이 분명 지혜와 재치를 필요로 하지만 잘못된 고식지계는 더욱더 어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호랑이 보고 창구멍 막기˝란 말이 있다.
이는 위급한 때 매우 당황하여 미봉책으로 이를 피하려 한다는 뜻이다.
이는 낫으로 눈을 가리고 제 몸이 다 가려진 줄 아는 것과 같으며,귀 막고 방울 도둑질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만큼 일만 더 크게 벌려 놓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노루 친 몽둥이 삼 년 우린다˝는 속언이 있다.
어쩌다가 한번 노루를 때려잡은 막대를 가지고 이것만 가지면 언제나 노루를 잡으려니 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는 말인데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지난날의 구태의연한 방법들을 무조건 지금에도 적용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이다.
그러므로 미봉책도 어떤 상황에서 한번이면 족하다.
어떤 미봉책을 써서 그 순간 일이 잘 되었다고 하여 그것을 훗날까지 두고두고 적용시키려고 한다면 ˝노루 친 몽둥이 삼년 우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그야말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미봉책(彌縫策)]
[意義]
실로 꿰매는 방책이란 뜻으로, 빈 곳이나 잘못된 것을 임시 변통으로 보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字解]
彌 : 꿰맬 미
縫 : 꿰맬 봉
策 : 꾀 책
[解義]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환왕조(桓王條)에 보이는 말이다. 만백이 우군이 되고 채중족이 좌군이 되었으며, 원번과 고거미가 중군으로 장공을 모시는 어려진(魚麗陣)을 폈다.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보병이 이를 뒤따르되 보병이 전차부대의 틈을 연결시키는 전법이다[曼伯爲右拒 蔡仲足爲左拒 原繁高渠彌以中軍奉公 爲魚麗之陳 先偏後伍 伍承彌縫].
춘추시대의 주(周) 환왕은 명목뿐인 주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당시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는 정(鄭)의 장공(莊公)을 토벌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장공의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적 실권을 빼앗았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장공이 왕실에 대한 조현(朝見)을 중지하자, 이를 구실로 괵(븀)·채(蔡)·위(衛)·진(陳) 네 나라 군대를 동원하여 정나라로 진격하였다. 허난성 수갈(繡葛)이라는 곳에서 환왕의 군사를 맞은 장공은, “연합군의 좌군을 이루는 진은 어지러운 국내 정세로 전의를 잃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나라 군사부터 먼저 공격하면 반드시 패주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환왕이 이끄는 중군에 혼란이 올 것이며, 괵공이 이끄는 채, 위의 우군도 지탱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입니다. 이때 중군을 공격하면 승리는 틀림없습니다.” 하는 공자 원(元)의 진언을 받아들여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보병이 전차부대의 틈을 연결시키는 오승미봉(伍承彌縫)의 전법으로 토벌군을 격퇴하였다. 군사들이 도망하는 연합군을 계속 추격하려 하자, 장공은 “군자란 약자를 업신여겨서는 안 되는 법이다. 하물며 천자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 나라의 안전만 보전하면 그뿐이다.” 하고 이를 제지하였다. 이로써 장공은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되었으며, 미봉책이란 말이 사서(史書)에 실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미봉이란 본래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는 조금도 빈틈없는 전투 포석이었는데, 오늘날에는 그 뜻이 변질되어, 아랫돌 빼어 윗돌 막는 임시 변통의 입막음용 꾀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出處]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