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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단지보 邯鄲之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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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지보 邯鄲之步
[字解]
邯 : 땅 이름 한
鄲 : 조나라 서울 단
之 : 의 지
步 : 걸을 보
[意義]
한단의 걸음걸이라는 뜻으로, 제 분수를 잊고 무턱대고 남을 흉내내다가 이것저것 다 잃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出典]
장자(莊子) - 추수편(秋水篇).
[解義]
공손룡(公孫龍)은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사상가로, 자신의 학문과 변론이 당대 최고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장자(莊子)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변론과 지혜를 장자와 견주어보려고 위(魏)나라의 공자 위모(魏牟)에게 장자의 도(道)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장자의 선배인 위모는 공손룡의 의중을 알고는 안석에 기댄 채 한숨을 쉬고 하늘을 우러러 웃으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밖의 세상을 볼 수 없다라고 말하고, 가느다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송곳을 땅에 꽂아 그 깊이를 재는 꼴이라며 비웃었다.
그리고는 이어서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네는 저 수릉(壽陵)의 젊은이가 조(趙)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의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그는 한단의 걸음걸이를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본래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엎드려 기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걸세. 지금 자네도 장자에 이끌려 여기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는 그것을 배우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네 본래의 지혜를 잊어버리고 자네의 본분마저 잃게 될 걸세.˝ 이 말을 듣고 공손룡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도망쳤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말이 비롯되었으며, 이는 자기 본분을 잊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는 지각없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웃어준 이야기이다.
[同意語]
한단학보(邯鄲學步).
[[장자 莊子(BC 369~BC 289?)]]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송(宋)의 몽읍(蒙邑:河南省商邱縣 근처) 출생.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나 맹자(孟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으며 10여 만 자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하였다.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저서인 《장자》는 원래 52편(篇)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산수(刪修)한 33편(內篇 7, 外篇 15, 雜篇 11)으로, 그 중에서 내편이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사상】인간의 마음은 일정한 시대 ·지역 ·교육에 의하여 형성되고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이 마음이 외부 사물들과 접촉하여 지식이 생긴다.
이러한 지식은 시대 ·지역,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장자는 이러한 지식에 입각한 행위를 인위(人爲)라고 한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여 그것을 이어주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그것을 잘라주면 그들을 해치게 되듯이 인위는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본다.
도는 일(一)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거미 ·가라지 ·기왓장 ·똥 ·오줌 속에도 있다.
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反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물(物)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수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영향】이러한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禪宗)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하였으므로,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송(宋) ·명(明) 이학(理學)은 유학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사상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
[[공손룡 公孫龍(BC 320 ?~BC 250 ?)]]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사상가.
자는 자병(子秉). 그의 행적은 《장자(莊子)》 《여씨춘추(呂氏春秋)》 《회남자(淮南子)》 《유향별록(劉向別錄)》 《양자법언(楊子法言)》 등에서 볼 수 있다.
저서는 《한서(漢書)》의 <예문지(藝文誌)>에 14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적부편(跡府篇)> <백마편(白馬篇)> <지물론(指物論)> <통변론(通變論)> <견백론(堅白論)> <명실론(名實論)> 의 6편뿐이다. 이 6편이 위작이라는 설도 있으나, 아마도 14권의 잔본일 것이다.
<적부편>은 후세 사람이 첨가한 공손 룡의 약전이다. 따라서 나머지 5편이 공손 룡이 쓴 것이다.
<백마편> <견백편>은 다 같이 물체와 속성, 내포(內包)와 외연(外延)의 문제, <지물론>은 지시와 지시의 대상에 관한 문제, <통변론>은 명칭 ·개념과 사물 ·실질과의 변화문제, <명실론>은 명과 실의 일치문제를 다루었다.
보통 그는 명가(名家)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며, 또한 그의 논술을 궤변이라고 하나, 단순한 궤변이 아니라, 당시의 혼란한 사회를 질서 있는 사회로 돌이키려고 하는 의욕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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