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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臨深履薄(임심리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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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深履薄(임심리박)
[字解]
臨(임할 임,림)
深(깊을 심)
履(밟을 리)
薄(엷을 박)
[意義]
깊은 곳에 임하듯 얇은 데를 밟듯 조심해서 행하여야 한다는 뜻으로,몸을 사리며 몹시 조심함을 비유한 말이다.
如臨深淵(여임심연:깊은 연못에 다다른 것과 같음)과 如履薄氷(여리박빙:엷은 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음)이라는 표현에서 유래(由來)됨.
[出典]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
후한서(後漢書) 권78 열전(列傳)제38 양종전(楊終傳)
[解義]
서주(西周) 시대 말엽, 시대적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유왕(幽王)의 잘못된 정치를 풍자한 노래이다.
이 시는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는 마지막 장만을 인용한다.
....
不敢暴虎 不敢馮河
불감폭호 불감풍하
人知其一 莫知其他
인지기일 막지기타
戰戰兢兢 如臨深淵
전전긍긍 여임심연
如履薄氷
여리박빙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배 없이 큰 강을 건너지 못함을,
사람들은 그것 하나는 잘 알면서도,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두려워 벌벌 떨면서 몸을 움츠리며, 깊은 못에 다다른 듯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 한다.
*旻(하늘 민) 幽(그윽할 유) 敢(감히 감) 暴(사나울 폭) 虎(범 호) 馮(탈 빙) 河(강 이름 하) 知(알 지) 其(그 기) 莫(없을 막) 他(다를 타) 戰(싸울 전) 兢(삼갈 긍) 淵(못 연)
후한서(後漢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동한(東漢) 명제(明帝)의 황후 마(馬)씨는 개국공신인 마원의 딸로서, 학식과 교양이 있고 예절에 밝았으며, 항상 너그럽게 사람을 대하였다.
게다가 마황후는 생활도 매우 검소하였으므로, 조정의 사람들은 그녀를 한층 존경하였다.
명제에게는 가비(賈妃)가 낳은 단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마황후는 그를 친자식을 대하듯 정성을 다해 길렀다. 후에, 명제가 죽자, 단이 즉위하였으니, 그가 곧 장제(章帝)였다.
장제는 즉위한 후, 자신을 잘 길러준 것에 보답하기 위하여 마황후를 황태후로 모시고, 마태후의 세 오빠들, 즉 마요(馬廖), 마방(馬防)과 마광(馬光)에게도 작위를 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마태후는, 당시 너무나 많은 외척들이 봉록을 받아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이를 걱정하여 장제의 뜻을 거절하였다.
후에, 마요의 어머니가 그들 삼 형제는 분묘를 매우 높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장례 규정을 어긴 것이었다. 마태후는 이 사실을 알고, 즉시 사람을 보내 분묘를 다시 고치도록 하였다.
태후의 독촉으로 마요는 언행에 비교적 신중하였으나, 그의 아들 마예(馬豫)는 멋대로 행동을 하고 다녔다. 마요 역시 자기 아들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당시, 마요의 친구인 양종(楊終)은 이러한 상황을 보고, 마요에게 서신을 보내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한나라 초, 많은 제후와 왕족들의 자제들이 가르침을 받지 않고 법을 어기는 일이 많았는데, 그 결과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네. 자네는 어찌하여 깊은 연못에 다다르며,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것을 본보기로 삼지 않는가[豈不可臨深履薄, 以爲至戒]?˝
그러나 양종의 권고도 마요를 깨우치지를 못하였다.
얼마 후, 마태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마씨 형제들도 점차 세력을 잃었다. 마예는 원한을 품은 채, 부친을 등에 없고 조정을 비방하는 글을 썼다.
마요는 봉지(封地)에 돌아온 후, 마예를 엄하게 고문하였으나, 마예는 굴복하지 않고 결국 죽고 말았다. 몇 년 후, 마요도 분노를 안은 채 세상을 떴다.
*賈(값 가) 妃(왕비 비) 章(글 장) 帝(임금 제) 廖(공허할 료,요) 防(둑 방) 豫(미리 예) 終(끝날 종) 豈(어찌 기) 戒(경계할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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