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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姦似忠(대간사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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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大姦似忠(대간사충)
[字解]
大(큰 대)
姦(간사할 간)
似(같을 사)
忠(충성 충).
[意義]
아주 간사한 사람은 충신과 흡사하다는 뜻으로,악한 사람이 본성을 숨기고 충신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出典]
송사(宋史)
[解義]
송(宋)나라 제5대 영종(英宗)은 제정 개혁에 힘썼다.
그러나 즉위한 지 겨우 4년만에 세상을 떴다.
그 뒤를 이어 신종이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아버지 영종이 이룩하지 못한 개혁을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어린나이의 신종을 도와 왕안석(王安石)이 개혁을 추진시켰다.
그는 신종의 신임을 얻어 조정 안의 보수 반동세력과 재야의 지주, 부상(富商)계급의 세찬 비난과 반대속에 잇달아 새로운 법을 공포했다.
왕안석이 재상에 취임하는 것을 가장 강하게 반대한 사람은 어사중승(御史中丞)의 여회(呂悔)였다.
여회는 왕안석을 탄핵하는 상소를 신종에게 올렸다.
그는 ˝아주 간사한 사람은 충신과 비슷하고, 큰 속임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든다[大姦似忠 大詐似信].˝며, 표면은 질박하게 보이면서도 흉중에는 간사한 음모가 있으며, 교만하고 황실을 업신여기며 음험하여 남을 해치는 대간이라하여 왕안석의 잘못을 조목조목 들고 있었다.
그러나 신종은 왕안석에 대한 신임은 변치 않아 여회에게 탄핵문의 취소를 종용했다.
대간사충은 여기서 나온 말로, 정말로 간사한 사람은 언사가 교묘하여 누구라도 충신이라고 믿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 후에도 신종은 왕안석에 대한 신임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여회를 지방으로 좌천시키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종이 죽고, 왕안석도 물러나 은퇴하자 보수 반동 세력이 다시 득세하여 개혁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參考]
王安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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