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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鹽藏) 지르다
동해 겨울바다에서
하루 종일 헤엄치며 놀고 있었더니
불현듯 어부가 던진 그물에 붙잡혀
돌아갈 길 잃어버린 고등어 한 마리
소름 퍼렇게 돋아난 몸에
겁 먹은 눈동자로 어물전에 누워 있다가
백정 같은 간잽이 손에 걸려 들었다
큼지막한 칼이 그를 38선처럼 가른다
땅도 역사도 다 빼앗기고
제 것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나라
에라, 염장(鹽藏)이나 질러야 겠다고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왕소금에
겨울숲은 어제
스스로 내장을 다 들어내 버렸고
겨울강은 오늘에야
핏기 다 빼버리고 하얗게 얼어누웠다
나, 라는 물고기 하나도
선승(禪僧)의 소리처럼 할, 하며
번쩍 반으로 가르고 염장(鹽藏)을 지른다
서너 시간 내버려 두어 소금물이
등뼈까지 촉촉하게 스며들게 해서는
독에 켜켜이 쌓아 넣거나
가마니에 넣어 흙속에 파묻거나
어둠 뚫고 찾아온 들짐승이
채가지 않게 꼭꼭 숨겨 두었다가
몇 겁 같은 달포쯤 지나서 꺼내보면
이내 몸도 간고등어처럼
썩지 않고 숙성한 채로 잘 지내고 있겠지
저것은 네가 숨죽여 만든 사랑이지
저것은 나를 죽이고 만든 사랑이지
이 겨울의
얼음강처럼 눈꽃나무처럼
불길 같은 염장(鹽藏)을 지르면
아아, 나도 타고 남은 재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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