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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이 없을 때는 링게르 한 병
´링게르 한 병´을 맞으러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있다. 주로 손주가 있을 나이의 할머니들이다. 진찰을 하는 의사에게 ˝하도 기운이 없어서 링게르 한 병 맞으려고 왔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분들은 자식들이 큰 도매약국에 가서 아주 비싼 링게르를 사다 주었다면서 보퉁이에서 수액병을 꺼낸다. 이걸 맞으러 오셨다는 것이다. 비싼 것 사셨으니까 집에서 그냥 맞으시지 그러느냐고 슬그머니 물어 보면, ˝의사 양반들 있는 데서 맞아야 된다고 자식들이 그랬다˝고 하신다.

고혈압으로 진단 받고 고혈압약을 처음 먹기 시작하면, 높던 혈압이 점차 내려가면서 기운이 빠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간을 1~2주 정도 거치게 된다. 진찰실에서 미리 이와 같은 사실을 설명하고 치료를 위해 거치는 과정이라고 일러드리지만, 어떤 사람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진찰실을 찾아 와서는 ˝이렇게 기운이 없어서 어떻게 사느냐. 고혈압약은 이 다음에나 먹을 테니 우선 좋은 링게르 한 병 맞고 기운을 되찾아야 겠다˝고 항의섞인 요구를 들이민다. 그런 사람일수록 혈압은 그저 전보다 조금 내려왔을 뿐 아직도 정상보다 높고 심장도 오랜 세월을 고혈압에 시달리느라 나빠져 있기 십상이니, ´링게르´를 맞는 다는 것은 참말로 좋지 않은 얘기다.

링게르(수액주사)에 대해 이런 오해가 뿌리내리게 된 것은 한편으로 이해할 만하다. 90년대인 지금은 설사 때문에 죽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설사(이질)는 우리 나라의 사망원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있었다. 그보다 아주 조금 앞 시대에 설사는 폐렴과 함께 최고의 사망 원인이였다. 해마다 수만명의 사람이 설사 때문에 목숨을 잃었으니, ´설사병이 돌면 아이들이 하도 많이 죽어서 어떤 마을은 시체를 삼태기로 담아냈다´는 얘기가 그리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시절에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었다. 바로 그 ´링게르´만 달면 죽어가던 사람이 감겨가던 눈을 치켜올리며 기운을 되찾았다. 딴 병이 아니라 쏟아져 내리는 설사 때문에 심한 탈수에 빠져 몸 안의 수분이 거의 마르고 피 속의 미량원소들이 균형을 잃으며 혼수상태로 된 것이니, 일단 혈관으로 수분만 공급해주면 되살아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였다. 너도 나도 가난하던 시절, 구멍난 내복과 양말이 예사이던 시절, 밥 먹었느냐가 절절한 인사말이던 시절, 의료보험이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 아니였다. 이미 며칠이나 설사를 해서 심한 탈수로 중환자가 돼버린 사람을 변변치 않은 교통수간으로 병원까지 옮겨야 하고 당시로는 엄청났을 치료비를 어떻게든 낼 각오가 되어 있어야 그 치료, 즉 링게르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였다.

마음에 한을 남기며 아로새겨진 기억이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의 한서린 넋두리를 귀아프게 듣고 자란 자식들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각인된다.

링게르를 맞고 싶어하시는 할머니를 마주하며, 나는 오늘도 설명을 시도해 본다. 늘 같은 이야기지만, 듣는 사람에게 보다 더 쉬운 설명 문구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해 본다. ˝요즘은 집집마다 웬만하면 상하수도, 냉장고, 가스레인지, 게다가 수세식 변소를 갖춰서 옛날 같은 설사병이 없지요. 또 설사를 한다 해도 그저 조금씩 하루 이틀 하는 정도죠. 그런데 옛날에야 그랬나요. 변소에 있던 파리들이 부엌을 드나들고 우물에도 틈새가 있어서 변소물이 스며들고, 그래서 무서운 설사병이 많았죠. 설사병 걸리면 그야 링게르가 최고죠. 그거 안 맞으면 큰일나죠. 링게르는 그런 때 맞는 거랍니다. 지금 같은 때에 맞으면 주사 맞으면서 그대로 오줌으로 나가버려요. 비싼 돈내고 물 한잔 마시는 거랑 같은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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