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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법(强精法)을 알자
예 로부터 선비는 효도하기 위해선 스스로 의술을 터득해서 약을 다려 직접 시탕(侍湯)하고 간병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 해왔다. 따라서 의술은 선비가 갖추어야 할 유자지일사(儒者之一事)라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고의서를 보면 오늘날의 안목에서 볼때 의료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유학자들에 의해 흔히 편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왕과 왕실의 건강관리를 도맡는 내의원같은 특별한 의료조직이 서민 의료와는 달리 존재해 왔다. 조선조 500년을 통해 삼의사(三醫司) 중 내의원과 혜민서(惠民署)는 이런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조선초 이후 남녀유별을 강조해서 아녀자들은 의원의 진찰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태종때부터는 의녀가 생겨났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손목에 명주실을 묶게 하고 먼 발치에서 병든 아낙네들을 진찰하는 사진(絲診)같은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이런 우리의 의료문화를 되돌아 볼 때 앞으로도 계속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할 긍정적인 의료유산도 많지만 당시의 자연철학에 따라 이상한 양생법이나 강정법이 유행되기도 했다.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던 도교적인 불로장생술과 선단(仙丹)같은 이상한 약도 유행한 적이 있었다.
또 지배층의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였던 방중술(房中術)이 발달해서 포박자(包朴子)같은 책과 함께 전통적인 강정법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런 강정법의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남자의 정액은 배설되어 없어지기 보다는 사람의 생명선을 따라서 척추를 통해 대외로 회귀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른바 보류교접(保留交接)이나 접이불설(接而不泄)이 추천됐다. 다시말하면 대뇌로부터 척추를 통해 방광이 내려왔던 사정(射精)되지 않은 정액은 그 본래의 고장인 대뇌로 되돌아 가게 하고 이렇게 하면 정액이 머리로 돌아와 머리까지 좋게 해서 환정보뇌(還精補腦)한다고 믿었다. 누구나 불로장생하려면 필수적인 강정법이라 했다. 과학적인 성의학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런 얘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40대 이후 점차로 생식기능이 감퇴하고 정력이 떨어지는 단계에서 가끔 보류교접을 하는 것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서양에서 나온 성생활에 관련된 책을 보아도 나이 들면서 부부간에 서로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 가끔 보류교접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성생활을 통해 남녀간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원칙을 지나치게 고집하거 시중에 나도는 「소녀경(素女經」에 현혹되어 너무 따르다 보면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겠다.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먹는 음식이 점차 동물성 식품으로 바뀌면서 접이불설을 고집하다 보면 전립선 비대증이 생기기 쉽다. 역시 방사과다(房事過多)나 다설(多泄)을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라 보기 어렵거니와 도교적인 방중술만 따르다 보면 병도 생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자료제공 : LG의료보험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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