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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전설, 크레이지 호스
단 한 사람의 요구에 의해서도 역사는 새로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역사주의의 근본 이념이다. 따라서 새로운 역사주의가 쓰는 ´역사들´은 기존의 역사가 보여주는 타자성의 억압이라는 이미지의 반대편에 타자성과의 공존과 화해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최근 소수 민족의 흥망과 성쇠를 다룬 역사서가 하나의 ´붐´을 이루면서 출간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들´에 어떤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낭만화´라는 위험이 그것이다.

그것은, 소수 민족을 미개하다거나 교육받지 못했다고 배제하는 문명국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을 그 미개하고 무식한 소수 민족이 창조하고 또 영위하고 있었다고 믿는 낭만주의 정신에서 기인한다. 타자성과의 진정한 만남은 여기서 사실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낭만화된 역사들은 대개 역사 기술의 대상을 자기 투영물로 삼아 타자성의 자의적 왜곡이라는, 이번에는 보다 교묘한 또 다른 억압의 이미지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려 보면 그 점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니까 소수 민족의 흥망과 성쇠를 살피면서 보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이루고 있던 그들의 쇠망에 가슴아파하고 그들의 문화를 미화하는 식의 ´역사들´과 그 역사들에 대한 감상적 접근은 ´역사의 낭만화´라는 새로운 역사주의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디언의 전설, 크레이지 호스>라는 책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미국 인디언의 멸망사를 ´크레이지 호스´라는 한 영웅적인 인디언 추장을 통해 그려간다는 점에서 일단 타자성을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낭만화된 역사들의 일부라는 혐의가 있어 보인다. 물론 역사의 낭만화라는 위험을 이 책이 완전히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타의 ´미국 인디언 멸망사´들과 다르게 거기에는 인디언의 문화적 세목들이 풍부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점은 역자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는데, 실제로 멸망의 드라마틱한 전개가 아닌 문화적 세목들의 풍부한 제시는 타자성에 대한 참된 이해에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

´드라마틱한 스케일´이 아닌 ´문화적 세목´ 속에서 타자성과의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를 버리고 ´너´에 투신하는 심각한 모험 없이 타자의 진정한 면모를 이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인디언의 전설, 크레이지 호스>에는 분명 ´미국 인디언´이 살지 않고 온전히 ´인디언 그 자신들´만이 산다. 이 책은 인디언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에 기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그런 만큼, 매우 엉뚱하게 들릴 테지만, 이 책은 실연당한 사람들이나 실연시킨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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