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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입이 없는 것들 |  | |
| 가끔은 글쓰는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낄때가 있다.확연하게 잡히지 않는 어떤 이미지들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언어로 만들어내는 깔끔함.불면의 밤을 수없이도 지새웠으리라.수없는 명상과 죄없는 종이가 뜯겨져 나갔을 것이다.혹은 전단지를 붙여놓은 모니터앞에서 물끄러미 커서를 응시했으리라.그렇기에 질투는 이내 사라지고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시집을 찬찬히 읽다가 ‘가상임신’ 에 이르러서 어떤 전율을 받았다.이거다.이거.다른 많은 시들보다도 단 하나,이 부분이 오래도록 기억에 각인되었다.‘행복은 비참의 가상 임신 아니었던가.’
시집을 읽는내내 김기덕감독의 영화,‘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떠올렸다.입이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진짜 입이 없을까?..입이 있음에도 섣부르게 입을 열 수 없다.절절히 느끼되 가슴속으로 삼키는 것.그것은 애달프다.
닫음으로써 밖에 헌신할 수 없는 그것.´언어야말로 미혹과 번뇌의 도구다.不立文字야´..영화안에서 침묵하면서 반야심경 글자를 파헤쳐 내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언어로 인한 번뇌는 침묵속 실천으로서만 씻겨진다.피가나고 땀이 난다.어느덧 날은 지고 낮과 밤은 바뀌고,살인도구였던 칼로 언어의 업을 파헤치는 행동만 행해지는 그것.사실 칼로 파는 그 장면에서 무언가가 내 가슴팍을 후리쳤다.
영화안에선 아예 노골적으로 닫을 閉자를 보여준다.눈과 코와 입을 막고 고통을 짓이긴다.가슴 한줄기가 서늘했다.애써 피하고 싶었다.설령 가상임신일지라도 그것을 믿고 싶었다.살아가는 징역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었다.그러나 피하지 않고 또렷이 보았다.피한다고 될일이 아니다.고통스럽지만 보자.부딪혀보자.
시집안에는 피와 눈이 대비된다.꽃이 피고 꽃이 진다.영화안에선 선사가 배에서 장작에 불을 붙이고 스스로 다비에 든다.물과 불.또한 영화에서 두개의 문이 등장한다.배를 타고 가서 여는 문과 닫는 문.피안과 차안.중요한건 절방에 벽이 없다는 사실.분명히 문은 다른데,벽은 왜 없나.결국 뚜렷한 두 대립적인 요소에서 다른 뭔가를 찾는다.변증법적 고찰.결국 불과 물은 하나다.결국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고,통하게 된다는 경계허물기.
영화에서 가을까지의 불상은 바로 현재불이라는 석가여래불상.선사의 열반후에 중년승(김기덕감독)이 구도를 시작하는 겨울에서의 불상은 미래불이라는 미륵반가상으로 바뀐다.이전의 업과 경계들은 얼음속에 파묻힌 석가여래불처럼 과거의 것으로,미래에 번뇌의 중생을 밝히려 온다는 미륵불의 출현을 예견케 한다.그것은 어쩌면 또다른 가상임신이 아닐까?..
중년승이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고 몸에 돌을 매고 산으로 힘겹게 올라가는 엔딩장면에서 다리에 힘이 쭉 빠졌었다.이 시집의 ‘내 생애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을 읽고서도 마찬가지.그래도 어쩌랴.또 살아가야 되는 것을.찢기는 그림자를 향해 절하는 것일지라도.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한다고 그러던가.아직 내 삶 곁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없었다.염하는 모습을 나도 언젠가는 보게 되겠지.입에 대한 단상.입이 없는 것들은 슬프다.그러나 입이 있는 것들은 더 슬프다.더 애달프다.그것이 아름다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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