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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살아 있는 자의 살아있다는 아우성˝
김훈은 연필과 지우개로 글쓰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다 큰 어른이 책상에 붙어 앉아 오른손에 연필을, 왼손에 지우개를 들고 손이 까맣게 되도록 글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은 앙증맞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몸으로 밀고 나간 글이 ´김훈 세설, 두번째´로 묶였다.

컴퓨터로 글쓰는 일이 팔자에 맞지 않는다는 그는 연장과 몸이 이뤄내는 일에 무한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젊은 목수들이 집짓는 현장을 한 철 내내 구경하면서 ˝세상의 재료들을 재고,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일으켜 세우고 고정시키는 자들의 기쁨으로 그들의 근육은 꿈틀거렸고, 날이 선 연장들은 햇빛에 빛난다. 아아, 연필과 지우개는 죽어 마땅하리라......˝고 말한다.

김훈에게는 김훈다움이란 것이 있어서 모든 것이 그 길로 통한다. 핸드폰이 젖꼭지에 부딪쳐 부르르 떨릴 때 그는 더 이상 핸드폰을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를 부르는 신호가 너무나 즉물적이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기계가 아닌 신호로 여겨질 때 그는 비로소 핸드폰을 사랑할 수 있다.

일전에 그는 <자전거 여행>에서 제 몸을 엔진삼아 풍경과 연결되며 나아가는 일을 이야기한 바 있다. 세상과의 거리가 제 몸의 힘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일이 그는 한없이 아름답다 했다. 그가 사랑하고 갈구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운동성, 그 촉감. 감각의 구체성.

이 책의 제목 ´밥벌이의 지겨움´도 그렇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 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p.37 중에서)

도리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해야하는 살아있음의 구체성, 그는 그것을 말한다. 김훈의 글이 새롭게 다시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막연한 이야기가 가슴 답답하도록 멍청하게 느껴질 때, 소설이, 사회비판이, 세상에 대한 앎이 온갖 추상성으로 물들어갈 때 나는 목이 메도록 김훈의 글이 그립다.

살아 있는 자의 살아있다는 아우성, 김훈의 글에선 그것이 느껴진다. - 최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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