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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 |  | |
| 삶을 사는 것은, 세월을 견디는 것은 바로 나다
1999년 퓰리처상과 펜 포크너상을 동시에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세월」(원제:The Hours)의 주요한 키워드는 버지니아 울프이다. 아니, 키워드를 넘어서 그녀 없이는 이 소설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다. 제목에서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원제:The Years)을 차용하면서 실제의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브라운 부인과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라리사를 그리고 있다. 소설 「세월」은 영화 ‘디 아워스’의 제작에 힘입어 미국에서 다시 한 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더니 국내에서도 영화의 개봉과 함께 재출간되었다.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장면으로 시작된다. 1941년 3월 28일, 코트 주머니에 돌을 채워놓고 우즈강에 서서히 몸을 밀어 넣는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을 담은 프롤로그가 끝나면 곧장 20세기말 뉴욕시의 클라리사 보건이 6월의 어느 화창한 하루를 연다. 그리고 1923년 런던 교외 리치몬드에서 아침잠을 깨는 버지니아 울프와 1949년 로스앤젤레스의 아침,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브라운 부인이 속속 이어진다.
창작의 고통보다는 참을 수 없는 두통으로 괴로운 버지니아 울프. 그녀에게 삶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하녀를 부리는 것이 어렵고 거울을 보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매일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두렵다. 어릴 적부터 앓아온 정신질환의 폐해라고 보기에 그녀의 내면은 지칠 대로 지치고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다. 커닝햄은 자살에 이르게 되는 그녀의 신산한 내적 풍경에 어떤 인과를 불어넣지는 않는다. 다만 위태롭게 풀어지는 버지니아의 일상이 다른 두 주인공들과 연관 짓도록 구성한다.
마이클 커닝햄은 브라운 부인과 댈러웨이 부인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이 던진 물음에 답하고 있다. 소설은 계속해서 죽음의 그림자가 울렁거린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는 브라운 부인의 일탈과 에이즈에 걸린 리처드의 투신 자살.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라고 자문한다. 삶에의 만족을 얻기에, 인생의 기쁨을 알기에 우리의 존재는 우리에게 너무나 크고 버겁다. 그래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일상을 견뎌 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세월을 타고 가는 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역할 하는 힘이 필요하다. 브라운 부인이 남편의 생일 파티를 위해 집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위해 축하연을 준비하는 클라리사처럼. 마이클 커닝햄은 차곡차곡 쌓이는 일상을, 세 여자의 시선으로 읽는 삶의 모습들을 귀속에 먼지가 쌓이는 소리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으로 섬세하고 또렷하게 전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영광으로, 찬란했던 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어떤 행운으로 세월을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위로 삼을 것이라곤 아주 간혹 우리의 삶이 전혀 뜻밖에도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가 상상해 왔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안겨 주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이런 시간 뒤에는 불가피하게 그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더 어려운 다른 시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은 도시를, 그리고 아침을 마음에 품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더 많은 것을 희망한다.”(P.344)
여기 불붙여 놓은 담배가 있다. 천천히 올라가는 연기가 우리의 삶인지, 그 만큼씩 타들어 가는 담배대가 우리의 삶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몰라야 하는 것이기에 아직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세월」은 삶이 이렇게 흘러가 버려도 괜찮은 걸까 라는 조바심을 가라앉히게 만들어 준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은 지 너무 오래 되었고 얇은 셔츠 바람으로 밤산책을 나선 것도 까마득하다. 삶은 그 모든 것이거나 아무 것도 아닌 둘 중 하나다. 버지니아 울프와 로라 브라운, 클라리사 보건의 연기이거나 담배대이거나 한 생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연기도 담배대도 소진되어 버리는 것을.
“그녀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식으로 죽어 가는 것이리라고. 성숙한 딸의 도움과 방의 안란함이 이렇게 좋을 수가. 그렇다면 거기엔 나이가 있을 테지. 그리고 작은 위안들이 있고, 램프가 있고 또 책이 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그대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잘 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거리에서 그대 곁을 스쳐 지나도 그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꾸려지게 된다.”(pp.335∼336)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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