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누더기 |  | |
| 나는 언제나, 끊임없이 나를 쓴다
2002년 10월 옮긴이 이재룡이 ‘산골에서 글쓰는 일을 제외하면 명상과 농사일에 몰두하고 있’는 작가 샤를르 쥘리에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나의 이야기, 자아가 빠진 문학이 내게는 공허해 보입니다. 나는 개별적 존재지만 그 깊은 밑바닥까지 추구하여 진정한 알맹이를 찾아내서 드러낸다면 보편적 자아를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독자와 함께 공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끝으로 짜내는 소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가을 기다림」,P.220)
‘소설은 허구이다’라는 명제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그의 발언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대개 자전적이거나 일기 같고 또 사실 그렇기도 하다. 누구나 자기 얘기를 쓸 때면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지거나 촌스러워지듯이 그는 진지하다. 그래서 때로는 촌스럽게 느껴진다. 농담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난 심각하다구, 라는 말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진지해서 자연스러운 촌스러움은 소설 속 그의 생과 우리의 인생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누더기」에서 샤를르 쥘리에는 생후 한 달만에 생모와 헤어져 양부모 슬하에서 자랐던 자신의 삶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연달아 세 아이를 낳고 마지막으로 그를 나은 후 탈진과 우울로 자살을 기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죽은 어머니 이야기를 1부에 넣고 2부에서는 시골에서의 유년시절과 소년군사학교에서의 생활 후 작가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그는 「누더기」를 1983년 시작해 1995년 탈고한다. 결코 두껍지 않은 이 책에 장장 12년에 이르는 시간이 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책의 말미에 이번 작업을 ‘제2의 탄생’이었다고 적고있다.
“이 이야기의 제목은 〈누더기〉가 될 것이었어. 하지만 이십여 쪽을 쓴 뒤, 넌 그만둬야 했어. 네 안의 너무 많은 것들을 뒤흔들어놓아서 넌 계속할 수가 없었어. 언젠가 그 이야기를 마치게 될 날이 온다면, 그건 네가 너의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너의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가 될 거였어.”(P.198)
대개 태어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다지 큰 의문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어릴 때 혹 ‘넌 어디서 주워왔다’는 식의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면 어김없이 그것이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온 것일까, 라는 최초의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경험이었다는 것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당신을 무덤으로 몰아넣은 이 아이를 용서해주세요.”(P.193)라며 절규하는 그에게 자기에 대한 탐구는 어쩔 수 없이 잉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양어머니에게서 자신의 내면적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된다.
「누더기」와 함께 출간된 「가을 기다림」은 그가 최초로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쓴 소설집이건만 그 인물들은 모두 작가와 쉽게 일치된다. 작가지망생과 젊은 화가, 성공한 사업가. 샤를르 쥘리에는 세 편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통해 삶의 진실과 정체성을 찾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투사해내고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소설의 감상을 묻는 말에 입을 다물기를 원하고 우리는 순하게 그 청에 응하게 되는 그런 묘한 납득이 샤를르 쥘리에의 소설에는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밑천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삶을 단물 쓴물 쏙 빼내어 소설의 소재거리로 삼는 작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 인생 얘기하자면 소설책 몇 권은 써야돼’라는 타령은 그와는 통하지 않는 말인 것이다. 그들은 대개 우리를 감탄하게 하는 불굴의 의지와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인생역정을 보여준다. 반면 자신의 삶에 천착한 글쓰기를 하는 샤를르 쥘리에의 삶의 질곡은 우리 인생의 혼돈과 서서히 초점이 맞춰진다. 그의 책을 읽다 어느새 그가 한 것처럼 나의 삶을, 생각을 줄줄이 써나가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손에 남아 있는 푸른 잉크 자국과 농사일로 흙이 묻은 투박한 그의 장화가 눈에 선한 것은 우리에게도 그런 삶이 있기 때문이리라. 아니, 누구에게나 밝혀지지 않는 삶의 정수가, 인생의 핵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by 리브로 |
|
|
|
|